[사회] 아버지 매에 못 배운 한, 92세에 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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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부산시교육청이 시행한 검정고시 초등부문 최고령 합격자인 박경자씨. [사진 박경자씨]
“글을 배우고 싶어서 간 야간학교도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쳐들어오는 바람에 글을 못 배웠다.” “글을 보면 나는 꽃을 본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는 것 같다.”
지난달 부산시교육청이 시행한 초등 검정고시 최고령 합격자인 박경자(92·해운대구 반송동)씨가 쓴 시 ‘글이 너무 좋다’에 담긴 구절이다. 초등 부문 기준 부산에선 물론 전국 최고령 합격자다. 박씨는 13일 통화에서 “말로는 다 못할 만큼 고단한 삶을 살았다. 내 삶을 글로 옮길 수 있게 된 것도, 좋은 선생님 덕에 시험에 합격한 것도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박씨는 1933년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남 흑산도, 어머니는 경남 김해 출신이어서 어린 시절 이들 지역을 오가며 살았다고 한다. 그는 “김해에 살던 때 일본 학교엔 조금 다닌 적이 있지만,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글이 너무 좋다’에 쓴 야간학교 이야기는 박씨가 실제 겪었던 일이다. 그는 “글이 배우고 싶어 13살 때 야간학교를 찾아갔는데, 그때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야간학교에) 나를 데리러 왔었다”며 “아버지는 여자가 글을 배우거나 밖으로 나돌면 안 된다고 호통을 쳤다. 그래서 글 배우기를 포기했는데, 이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어른이 돼 결혼을 하고 나서는 글공부할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박씨는 “7남매를 낳고, 먹여 살려야 했다. 조선소 배 수리, 고기잡이, 옷 짓는 일 등 잠도 제대로 못 자고 16가지 일(직업)을 닥치는 대로 했다”고 회상했다.

‘글이 너무 좋다’라는 시엔 그의 삶의 애환과 글에 대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진 박경자씨]
박씨의 남편은 40년 전 암으로 숨졌고, 슬하 7남매 중 두 아들도 2010년, 2016년 무렵 떠나 보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게 박씨 설명이다. 그러던 중 박씨는 5년 전 동네를 지나다 우연히 ‘파랑새 복지관에서 한글을 가르쳐준다’는 안내를 봤다.
그는 “교회를 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배워 조금은 읽을 수 있었다. 그 덕에 안내를 알아봤다”며 “퇴행성 관절염 때문에 다리가 많이 불편하지만, 복지관은 집이 가까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글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고 했다.
복지관에서 글을 배우는 동안엔 쑤시는 듯한 퇴행성 관절염의 통증도, 자식을 보낸 허전함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음껏 읽고 쓸 수 있게 된 박씨는 시화전에 작품을 내 몇차례 입선도 했다. ‘글이 너무 좋다’처럼 그가 쓴 시엔 모두 인생 이야기가 담겼다.
검정고시에 응시하게 된 계기에 대해 박씨는 “2, 3년쯤 전 복지관 이영지 선생님이 검시를 준비해보라고 권했다. ‘어머님이라면 할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이 정말 큰 응원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지난해 처음 치른 시험에선 낙방했다. 초등 검정고시는 필수 4과목(국어·수학·사회·과학)과 선택 2과목에 응시해 평균 60점을 넘겨야 합격한다. 그는 “작년엔 시험이 쉽다고 생각했는데도 떨어졌다. 올해는 시험이 어렵다고 느껴져 걱정했는데 오히려 붙었다”며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국어다. 정해진 시간 안에 글을 다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고 했다.
박씨에겐 중등검시에 도전하고픈 마음도 크다. 하지만 배울 곳이 마땅찮다고 한다. “중등 공부를 가르쳐주는 곳이 있지만 버스를 두세번 갈아타야 하고 거리도 멀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그 먼 길을 다니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는 박씨 목소리엔 진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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