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외국직원 어깨너머 배웠다, 고리 1호는 도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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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6월 19일 고리1호기 주 제어실에서 첫 가동을 지켜보는 직원들. [사진 홍장희]
홍장희(79·사진) 전 한국수력원자력 전무는 1977년 6월 19일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한국의 첫 원전인 고리 1호기가 첫 가동을 시작한 날이다. 고리 1호기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그는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90달러에 불과했다. 고리 1호기 공사에 들어간 1428억원은 영국과 미국 등으로부터 차관을 빌려온 것으로, 당시 정부 예산의 4배가량이었다”며 “국가의 명운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이라고 회상했다.
서울대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한 홍 전 전무는 1969년 2월 한국전력의 원자력 요원 1기로 입사했다. 미국 프레리아일랜드 원전 등에서 1년여간 교육을 받고, 고리 1호기 시운전과 상업운전을 모두 지켜봤다. 이후 정비관리부장으로 4년, 소장으로 2년 등 총 세 차례 고리 원전에서 근무했다.
그는 “외국에서 온 직원들을 위해 수영장이 딸린 관사를 지어줬는데, 국내 직원들은 허름한 여인숙에 차린 사무실에서 지낼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며 “외국 직원들의 노하우를 어깨너머로 배워야 했다. 고리 1호기는 한국 원전 도전의 역사였다”고 전했다.

홍장희
고리 1호기는 2017년 영구정지가 될 때까지 40년 동안 총 15만5260GWh(기가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하며 한국 산업화의 원동력이 됐다. 현재 국내에는 26기의 원전이 전력을 생산 중이고, 한국의 원전 기술도 일취월장했다. 홍 전 전무는 “2017년 정부에서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와달라는 초청장을 보냈지만 차마 갈 수 없었다”며 “고리 1호기의 시작 버튼을 눌렀던 내가 가동 정지를 축하하는 자리에 가서 박수를 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고 말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미국에서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96기인데 이 중 37기(38.5%)가 고리 1호기보다 오래됐다.
또한 고리 1호기와 비슷한 시기인 1976~1980년에 전력 생산을 시작한 전 세계 원전 86기 가운데 45기(52.3%)는 여전히 가동 중이다. 그는 “고리 1호기는 핵심 설비 대부분을 최신식으로 교체하면서 갈수록 성능이 좋아지고 있었다”며 “에너지·원자력을 이념의 대상으로 바라보다 보니 퇴장 시기가 빨라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홍 전 전무는 “한국은 까다로운 유럽과 미국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지녔다. 국내 원전생태계가 뒷받침돼야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가 생기고 수출도 늘어날 수 있다”며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지키면서 한국 원전의 경쟁력을 더욱 키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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