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여름 화채 시미루(西米露)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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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테는 다소 낯선 듯도 싶지만 그렇다고 아주 생소한 것만은 아닌 중국 디저트가 있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중국 코스요리를 먹으면 마지막에 후식으로 나올 때가 있고 홍콩이나 대만 마카오 중국 광동성 등지에서는 야시장이나 포장마차에서도 먹을 수 있다. 중국어로 시미루(西米露)라고 하는 시원하고 달콤한 수프(죽) 내지는 화채다.

중국 디저트 시미루(西米露). Ytower
남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시원한 화채 같은 망고 시미루, 코코넛 시미루 또는 맑은 죽 같은 호박 시미루 등이 우리한테는 비교적 익숙하다. 먹을 때 흑당 버블티의 타피오카 펄(진주)과 비슷한 맑고 투명한 작은 알갱이가 동동 떠있어 톡톡 터지는 맛 또한 일품이다.
시미루라는 화채, 알고 보면 참 독특하다. 중국 음식이면서 중국 음식이 아니고 현대에 만들어졌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가 깊다. 홍콩 대만 등에서는 야시장에서 먹는 대중음식이지만 동시에 한국이나 일본, 중국 북경 등지에서는 고급 식당에서 후식으로 제공된다. 얼핏 모순된 사실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나름 배경이 있다. 시미루, 과연 어떤 음식일까?
시미루의 정체는 일단 이름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서녁 서(西)와 쌀 미(米)자를 쓰는 시미(西米)와 이슬 로(露)자를 더해 만든 이름이다. 먼저 이슬 로로 맑고 시원한 화채라는 의미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시미는 무엇일까? 서쪽 쌀? 그러니까 서양 쌀이라는 뜻일까? 화채에 동동 뜬 알갱이를 서양 쌀로 만들었기에 지어진 이름일까?
전혀 아니다. 시미의 또 다른 중국어 이름은 시구미(西穀米)다. 여기서 시구, 즉 서곡(西穀)은 사고(sago)의 한자 음역이다. 그러니까 시미 혹은 시구미는 사고 야자나무에서 채취한 쌀알처럼 생긴 전분이라는 뜻이다.

코코넛 밀크. 바이두
시미루는 그러니까 남태평양 원주민 내지는 동남아시아 주민들이 옛날부터 코코넛 밀크에 사고 야자나무 전분을 개어 마셨던 음료 내지는 식품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바꿔말해 시미루를 뿌리 깊은 중국 전통 디저트로 알고 있지만 실은 현대에 동남아 음료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화채인 셈이다.
그러면 중국 전통 음식문화와는 관련이 없는 것일까? 그런 것도 아니다. 사고 야자나무의 전분, 즉 시구미가 들어간 시미루가 현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일 뿐이지 그 바탕이 되는 시원하고 달콤한 화채 음료는 옛날부터 있었다.
중국에서는 이런 화채를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를테면 달달한 엿물이라는 뜻의 탕수(糖水)라고 했다. 펄이 들어가지 않은 지금의 흑당 버블티 같은 음료다.
또 달콤한 국(죽)이라는 뜻의 첨갱(甛羹)도 있었고, 시원한 빙수에 가까운 량수(凉水)도 있다. 언제부터 이런 시원 달콤한 음료를 즐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본격적인 유행시기는 대략 1,000년쯤 전인 송나라 무렵으로 추정한다.
12세기 초 문헌인 『무림구사』에 남송의 수도였던 지금의 절강성 항주의 시장풍경이 보이는데 여기에 시미루의 원형이랄 수 있는 다양한 화채가 보인다.

절강성 항주의 옛 거리 풍경. 바이두
예를 들어 달달한 콩 음료로 보이는 감두탕(甘豆湯), 코코넛 밀크 종류인 야자주(椰子酒), 꿀에 절인 배즙 화채인 녹리장(鹿梨漿), 생강꿀차인 강밀수(薑蜜水), 모과즙(木瓜汁)에 절인 여지 화채인 여지고수(荔枝膏水), 꿀에 잰 금귤 화채로 추정되는 금귤단(金橘團) 등등이다.
그런데 11~12세기 무렵 왜 이런 시원하고 달콤한 화채 음료가 발달했을까?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이 때는 송나라 한족이 북방 민족에 밀려 양자강 중원에서 이남으로 내려왔을 때다. 그렇기에 무덥고 습한 현지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음료였다.
덧붙여 강남, 그중에서도 아열대 기후인 영남의 광동성 일대는 예나 지금이나 사탕수수 재배지역이다.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원당의 공급이 풍부해졌기에 찬란한 디저트 문화가 발달했다.

토란(芋頭). 바이두
하지만 이 무렵의 시원 달콤한 화채 음료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었다. 꿀과 원당이 풍부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가였기에 몸에 좋다는 각종 약재와 더위를 조절하고 영양을 보충하는 콩 종류 혹은 과일, 또는 밀로 만든 경단 등을 더해 만들었으니 그 자체로 보양 음료가 됐다.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것이 지금 흑당 버블티의 타피오카 구슬 대신 토란(芋頭)으로 만든 작은 알갱이 경단이고 여름이면 더위를 식혀주는 녹두(綠豆沙), 겨울에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팥(赤豆沙), 그리고 여름에는 수박 겨울에는 호박을 첨가한 화채 등이다.
송나라 때 이래 이런 중국 전통 디저트를 바탕으로 현대에 들어 망고와 사고 전분이 풍부해지면서 생겨난 화채가 망고 시미루다. 낯설면서 익숙한 중국 디저트 시미루의 유래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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