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K조선, 美방산까지 참여 논의"…협력 상징 필리조선소 가보니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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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조선소에서 시끄러운 기계음이 들렸다. 35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용접기가 쏟아내는 불꽃이 곳곳에서 튀었다. 직원들은 연신 땀을 닦아가며 작업을 서둘렀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십야드'의 도크에서 미국 정부가 발주한 선박이 한창 건조되고 있다. 필리조선소는 한화그룹이 지난해 12월 인수한 미국 조선사다. 필라델피아=강태화 특파원
조선소의 상징 골리앗 크레인엔 ‘한화(Hanwha)’란 글자가 선명했다. 한화의 상징색인 주황색으로 바뀐 크레인 밑에선 미국해사청(MARAD)이 발주한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이 한창 모양을 잡아가고 있었다.
인근 필라델피아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보인다는 이곳 필라델피아의 관문 조선소 ‘한화필리십야드(Hanwha Philly Shipyard)’의 주인은 한국의 한화그룹이다. 한화는 지난해 12월 1억 달러(약 1380억원)를 투자해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한국 기업이 미국 조선소를 인수한 건 처음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십야드'의 도크에서 미국 정부가 발주한 선박이 한창 건조되고 있다. 필리조선소는 한화그룹이 지난해 12월 인수한 미국 조선사다. 필라델피아=강태화 특파원
이종무 한화필리조선소장은 “10년 내에 생산 능력을 지금보다 10배로 확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필리조선소는 현재 적자 회사이지만 한국의 첨단 장비와 설비, 효율성을 극대화한 시스템을 접목해 오히려 한국의 한화오션보다 더 이익을 내는 회사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 해군의 국립조선소 부지에 설립된 필리조선소는 미국 상선의 50%를 생산한다. 그러나 연간 생산 능력은 1.5척에 불과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전국 50여개 조선소에서 연간 1000척이 넘는 선박을 건조하던 조선업이 완전히 쇠락했기 때문이다.

김주원 기자
전후 선박 수요가 줄어든데다, 자국 조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존스법(미 연안 무역법)’이 세계 최강이던 미국의 조선업을 붕괴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조선업계는 연안 항로에선 미국 선박만 운행할 수 있게 한 존스법에 기대 기술 개발과 혁신을 등한시하며 몰락했다.
그 사이 세계의 바다는 동아시아 3개국이 점령했다. 영국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선박 건조 점유율은 중국 53%, 한국 28%, 일본은 12%을 기록했다. 특히 미국의 유일한 경쟁국인 중국이 최소 232배 조선 생산 능력이 앞선 것은 군사적 측면에서도 미국에게 치명적 요인으로 꼽힌다.

김영옥 기자
국내 생산 기반이 붕괴된 미국의 입장에서 미래 해양주권을 지키기 위한 협력국은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이를 알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세계에 관세 압박을 가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만은 조선업 협력을 먼저 제안했다.
한화가 일찌감치 미국에 교두보를 만든 것도 미래 군수 시장을 염두에 둔 포석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필리조선소의 지분 60%는 방산회사인 한화시스템이 보유하고 있다. 조선사인 한화오션(40%)보다 지분율이 오히려 높다.

한화필리십야드 5도크에서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이 마무리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한화오션
데이비드 김 필리조선소 최고경영자(CEO)는 “이미 미 해군과 미국 전투지원함 건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해군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제공요청서(RFI) 2∼3개를 제출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해군의 전투함뿐 아니라 전투지원함 건조에 쓸 추가 국방 예산 200억 달러(약 27조8000억원) 이상이 승인돼 상·하원에서 예산 세부 집행을 논의하고 있다”며 “당장 전투지원함은 필리조선소가 건조하게될 함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한화필리십야드의 데이비드 김 최고경영자(CEO)가 미국과의 군수 협력 등 회사의 비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강태화 특파원
김 CEO는 특히 “필리조선소는 미국 회사”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화그룹이 미국의 상선 회사를 인수하면서 상선과 지원함을 넘어 향후 미국의 첨단 해군 무기를 한국의 기술로 직접 만드는 장기 포석까지 염두에 뒀다는 점을 시사한 말로 풀이된다.
한화그룹은 열악한 미국 내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비 기술자를 직접 교육해 조달하는 장기 프로젝트까지 가동하고 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조선소 내 ‘트레이닝 아카데미’에는 견습생들이 무더위에 땀을 흘리며 한국에서 공수해온 장비를 사용해 용접 및 생산 교육을 받고 있었다. 교육은 한화오션에서 파견된 50명의 전문 강사들이 직접 담당한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십야드 조선소 내에 설치된 '트레이닝 아카데미'에서 견습 직원들이 용접을 포함한 다양한 기술을 교육받고 있다. 필라델피아=강태화 특파원
지안토마소 인사팀 부사장은 “견습생에게도 첫 해 5만 달러(약 7000만원)의 연봉과 각종 복지 및 연금 혜택을 주고 있다”며 “올해는 120명 모집에 1000명 이상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2027년말까지 연간 채용 규모를 24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4개월째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저스틴 폴린은 “한국 기업이 조선소를 인수한 뒤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해 인근 주(州)에서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고, 나 역시 주변에 조선소 일을 추천하고 있다”며 “일을 배워서 멋진 배를 만들고 나중에는 내가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일을 맡고 싶다는 꿈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십야드 조선소 내에 설치된 '트레이닝 아카데미'에서 견습 직원들이 용접을 포함한 다양한 기술을 교육받고 있다. 필라델피아=강태화 특파원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산 철강에 부과한 50%의 품목별 관세는 필리조선소의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산 주요 부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관세 부담을 부담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아직 유동적인 측면이 많고, 발주자에게 일부 관세를 전가할 수 있는 계약 등도 활용하고 있다”며 “주요 선체 블록 및 핵심 부품을 한국에서 조달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필리조선소의 발전을 통해 한국의 조선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선순화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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