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한국 고서에 인생 건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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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일본 내 한국 고서를 추적한 후지모토 유키오 도야마대 명예교수. 책상 위에 조사 메모와 자료가 수북하다. 그의 연구는 한국학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김현예 특파원

좌식책상 위에 놓인 자그마한 백등이 두툼한 메모지 위 정갈한 글씨를 비춘다. ‘조선 서지학의 최고 권위자’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84) 도야마(富山)대 명예교수가 찾아낸,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고서(古書)들에 대한 이야기다. ‘광복 8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구도자의 길을 가듯 반백 년 동안 한국의 고문헌을 추적한 백발의 일본 학자를 지난달 만났다.

후지모토 교수는 1941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교토대 문학부 4학년 때. 오사카외국어대에서 조선어를 가르치던 김사엽 교수를 만나면서부터다. 초급 조선어부터 배우는 그를 위해 김 교수는 『동아새국어사전』을 구해줬고, 대학원에 진학하자 한국 유학을 권했다. 그는 박사과정 때인 1967년 정말 오사카에서 한국행 배를 탔다. 이틀 걸려 도착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가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외솔 최현배 선생이 회장으로 있는 한글학회였다.

“최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어학회 활동을 하며 일본으로부터 탄압을 받지 않았나. 일본이 원수 같았을 텐데 일본인인 나를 초청했다. 김 교수의 요청과 최 선생님의 관용에 유학이 실현됐다.”

서울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더듬더듬 한국어로 하숙방을 찾는 그에게 집주인들은 “왜놈은 안 된다”고 했다. 반면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하숙집 인근 시장 상인들은 “일본 유학생이니 조금 더 가져가라”며 덤을 얹어줬다고 한다.

그가 고문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유학 3년 차 때. 한국에서 사라진 선본(善本·가장 좋은 판본) 희귀서가 일본에 많다는 걸 알게 된 뒤, ‘이것들을 조사하면 조선어학에 공헌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고 한다. 1970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교토 인근 지역부터 훑기 시작했고, 16세기 조선 통역관 최세진이 만든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 목판 초판본을 찾아냈다.

이렇게 시작한 고서 추적은 그의 ‘일생의 업’이 됐다. 일본 궁내청은 물론이고 국회도서관, 개인 서고 등 책이 있는 곳엔 어디든 달려갔다. 이렇게 추적한 일본 전역에 있는 조선 고문헌이 약 5만권. 이 중 개인문집만 추려 2006년 『일본 현존 조선본연구 집부(集部)』를 내자 학계는 경악했다. 한국에 없는 조선·고려 문인들의 문집 약 1만권의 간행 연도와 판본, 활자와 종이질, 책 상태 등 세세한 정보가 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집부 출간으로 이듬해 한국 정부가 주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연구와 조사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8년 일본에 있는 역대 조선의 역사 문헌을 정리한 첫 자료집 『사부(史部)』를 출간해, 2021년 일본 학자로선 최고 영예로 꼽히는 학사원상(學士院賞)과 나루히토(德仁) 일왕(천황)이 주는 은사상(恩賜賞)을 받았다. 두 상을 모두 받은 학자는 손에 꼽힌다. 그는 “한국 관계 연구를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며 “남은 『자부(子部·자전)』와 『경부(經部·경전)』, 『도판(사진판)』을 출간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과 한국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란다. 내가 조선 서지학과 어학에 공헌할 수 있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았겠지만 조금이라도 양국의 관계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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