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독감 백신 접종 원정 붐 "3만원짜리 1만원"에…온 가족 총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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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광주광역시 북구보건소에서 직원이 독감과 코로나19 백신을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8일 오전 9시. 이제 막 진료를 시작한 서울 송파구의 한 내과 접수번호가 30번을 넘겼다. 대부분 인플루엔자(독감) 접종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이었다. 김선예(33)씨는 “근처 병원은 3만원인데 이곳에선 2만원에 맞을 수 있다는 얘길 듣고 친정엄마와 함께 30분 걸려 찾아왔다”며 “어린아이 키우는 집에선 부모도 필수로 맞는 게 좋다고 해서 엄마들 사이에선 ‘독감 저렴한 병원’ 정보를 공유하는 게 일상”이라고 말했다.
예년보다 두 달가량 빠른 지난달 17일 일찌감치 독감 유행주의보가 발령되면서 백신 접종을 서두르려는 시민들로 동네 병원이 연일 붐비고 있다. 특히 올해는 김씨처럼 좀 더 저렴한 곳을 찾아 발품을 파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독감 백신이 제약사와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대개 2만~5만원선인데 국산보다는 수입이, 3가보다는 4가가 더 비싸다. 한 병원 관계자는 “해외 백신은 환율이나 유통 절차 등의 이유로 공급 가격이 국내산보다 비싸다”며 “올해부턴 국가예방접종 기준이 3가로 전환돼 4가는 물량 자체가 줄어 가격이 높아진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제품이라도 병·의원과 보건소 등 기관에 따라 가격 차이가 두 배 이상 벌어지기도 한다. 예방접종이 가격 기준과 규제가 없는 비급여항목으로 분류돼 있어서다. 황수진(48)씨는 “최근 개업한 직장 근처 내과에서 이벤트 행사로 1만원에 접종할 수 있다는 얘길 듣고 지난 주말에 온 식구가 총출동했다”며 “1인당 1만~2만원 차이지만 여럿이 접종해야 하는 가족에겐 결코 적지 않은 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격 차이가 곧 효능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국가에서 권고·공급하는 3가 백신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독감 백신은 접종 2주 뒤면 항체가 형성되고 6개월가량 유지되는 만큼 평년보다 빠른 유행에 대비해 11월 초까지는 접종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모든 예방접종이 무료는 아니다. 지난 2월 도입된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예방 항체주사가 대표적이다. RSV는 급성 호흡기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돌 이전의 영아 세 명 중 두 명이 감염될 정도로 전파력이 강하다. 단순 감기 증상에 그치는 성인과 달리 1세 미만 영아는 폐렴·호흡곤란 등 중증으로 갈 확률도 높다. 하지만 아직 국가예방접종(NIP) 체계에 포함되지 않아 회당 접종 비용이 평균 60만~80만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이주연(33·경기도 하남시)씨도 지난달 초 생후 4개월 자녀의 RSV 예방 접종을 위해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았다. 이씨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 끝에 국립병원에선 일선 소아청소년과의 절반 가격에 접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택시를 타고 급히 다녀왔다”며 “연말까지 예약이 꽉 찼다는 말을 들으니 서두르길 잘했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재현 용인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RSV는 겨울철 영유아 입원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며 “접종하면 걸리지 않을 확률이 70~80% 수준이고 감염되더라도 중증으로 갈 확률을 20%까지 줄여준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미국·호주·스페인 등 여러 국가들은 이미 영유아 대상 무료 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다만 국내엔 이제 막 도입돼 NIP 지정까진 시일이 걸릴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수요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질병관리청 표본감시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입원 환자는 1만9562명으로 독감 환자(6205명)보다 세 배 이상 많았다. 치료 비용 역시 코로나19가 독감의 두 배 수준으로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상황이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위험 징후가 뚜렷해 정부도 올해부터 고령자와 면역저하자 등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을 NIP 체계에 포함했다.
윤기욱 서울대어린이병원 교수는 “감염병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산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특히 영유아 대상 감염병 예방이 자기 부담으로 남아있을 경우 저소득층 가정에선 예방접종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를 수 있는 만큼 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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