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뉴스] [강원포럼]대형 산불, 기후 재난으로 여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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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선 속초시장

2025년 3월, 경상북도 의성과 경상남도 산청에서 시작된 유례없는 대형 산불의 화마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재난 피해를 남겼다. 축구장 6만여 개에 달하는 10만㏊의 산림이 불타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4,000여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당국의 조사 결과 이번 산불 역시 개인의 부주의가 발화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산불이 단순 재난에 그치지 않고 역대급 재난으로 확산된 데에는 주목할 만한 다른 배경이 있었다. 올봄, 산불의 주무대가 되었던 지역들의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3.1도 높았고, 강수량과 습도는 각각 14.8㎜와 6% 더 낮았다. 이전 대비 현저하게 고온·건조해진 날씨. 여기에 초속 20m를 넘는 태풍급 강풍까지 더해지면서 산불의 확산 속도는 시간당 8.2㎞의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문가들은 이례적인 이번 봄철 강풍 또한 최근의 기후 변화에 따른 영향이라 진단하고 있다. 필자가 이번 산불을 단순한 실화가 아닌 기후 위기가 만든 복합 재난, 즉 기후 재난으로 인식하는 이유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추산한 올봄 대형 산불의 탄소배출량은 약 764만톤. 이는 중형차 약 7,175만대가 서울~부산을 왕복(800㎞)할 때 배출되는 양과 동일하다. 대한민국 국민 1인당 연간 탄소배출량이 약 12.9톤임을 고려하면, 약 60만명의 인구가 1년간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 정도의 대량의 온실가스가 단기간 한꺼번에 배출된 셈이다. 이렇게 대기 중 과도하게 축적된 온실가스는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는 열을 붙잡아 온실효과를 가속화하고 지구온난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
5월15일을 기해 지난 1월24일부터 운영되었던 ‘봄철 산불조심기간’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지구 전체를 뒤덮은 화마의 그림자 속에서 우리 속초가 ‘6년 연속 산불 없는 봄’을 굳건히 지켜냈다는 점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 재난이 속출한 가운데 어렵게 달성해낸 산불 제로화의 값진 성과, 그 중심에는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통된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양간지풍의 국지적 강풍과 고온 건조한 날씨 속, 산불 위험도가 상당히 높게 지속된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예방·예찰 활동에 헌신해주신 소방·산림 관계자 여러분과 산불감시원·진화대원 여러분, 그리고 산불 예방 수칙에 적극 동참해주신 시민 여러분께 먼저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아직 경각심을 거두긴 이르다. 산불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연중 재난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우리 속초시에서는 이러한 산불의 연중화 추세에 발맞춰 당초 5월15일까지로 예정되어 있던 봄철 산불방지상황실 운영을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는 5월 말일까지로 연장했다.
뿐만 아니다. 산불을 비롯해 기후 위기가 야기할 다양한 기후 재난에의 선제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을 위해 지난 4월에는 2040년까지 온실가스 제로화(Net-Zero) 달성과 탄소중립 도시로의 대전환을 목표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시불가실(時不可失).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서는 안 된다.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그리고 늦지 않게 행동하는 지혜만이 짙게 드리운 기후 재난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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