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뉴스] [님의 침묵 탈고 100주년]②‘님의 침묵’에 담긴 불멸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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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백담사. 강원일보 DB

100년전, 인제 내설악 백담사에서 탈고된 만해 한용운(1897~1944) 선생의 시집 ‘님의 침묵’은 단순한 이별의 시가 아니었다. 빼앗긴 조국과 상실된 진리를 되찾고자 했던 한 지식인의 뜨거운 문학적 실천이자 일제의 억압을 피해, 상징으로 감춘 민족의 염원이었다. ‘님의 침묵’의 핵심은 ‘님’이라는 존재다. 표면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그리워하는 시로 읽히지만, 그 ‘님’은 조국이자 민족이며, 진리 그 자체다. 만해선생은 시집 서문 격인 ‘군말’에서 “해저믄(해저문) 벌판에서 도러가는(돌아가는) 길을 일코(잃고) 헤매는 어린양이 긔루어서(그리워서) 이 시를 쓴다”고 밝혔다. 식민 치하에서 길을 잃은 민중의 처지를 ‘어린양’으로 은유하며, 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시로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한용운의 초상화. ‘문학사상’ 1972년 12월호 표지에 게재된 변종하씨 작품. 강원일보 DB

도올 김용옥 교수는 최근 진행한 특강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라는 구절에 주목했다. 그는 ‘님’이라는 존재가 단지 연인의 상징을 넘어 “중생에게는 석가가 님이고, 철학자에게는 칸트가 님이며, 이탈리아 독립운동가에게는 조국이 님”이라고 해석했다. 만해선생의 ‘님’은 모든 그리움의 이름이며, 검열을 피한 가장 문학적인 저항이었다. ‘님의 침묵’은 단순히 감성의 나열이 아니었다. 총 88편의 시는 이별(기), 고통(승), 전환(전), 만남(결)이라는 서사 구조를 따라 흐른다. 서시 ‘님의 침묵’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는 선언에서 시작된 이 시집은, 마지막 시 ‘사랑의 끗판’에 이르러 “녜 녜 가요 이제 곳 가요”라며 재회를 암시하는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만해는 이러한 여정을 통해 역설을 품은 철학을 펼친다. 이별은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이며, 침묵은 소멸이 아닌 생생한 몸부림이다.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님을 나는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시구는 조국이 사라졌지만 민족의 정신은 꺼지지 않았다는 선언이자, 항일 투쟁의 문학적 증언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사용하던 단주

‘님의 침묵’이 당대 문단에 큰 충격을 준 것은 파격적인 문학적 실험 때문이었다. 산문시 형식을 빌린 이 시집은 시조 중심의 시단에서 형식과 운율을 과감히 벗어나, 내면의 울림을 고유한 리듬으로 담아냈다. 충청도 방언을 적절히 섞고, 띄어쓰기까지 조절한 언어는 당대 시로서는 드물게 육성에 가까운 울림을 전했다. ‘님의 침묵’의 백미 중 하나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라는 구절이다. 이 ‘첫 키스’는 단순한 사랑의 기억이 아니다. 민족이 당하고 있던 모멸과 침묵 속에서, 만해는 그 날카로운 각성을 ‘키스’라는 파격적인 언어로 옮겼다. 키스는 접촉이고, 각성이고, 출발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자각(첫 키스)이 곧 독립운동이라는 새로운 운명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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