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군/정보] 양양군 손양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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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양양 손양면의 문화재 사진좀 부탁드릴께요
사진밑에는 설명과
뭐 어쩌구저쩌구...
이름도 써주시구요
종류등등......
너무 많은걸 권해서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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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 확신할수는 없지만 고대에는 우리와 같은말을 썼다는 설이있습니다. 또 일본이라는 섬 자체가 우리땅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학자들의 연구가 있습니다. 또 우리문화가 일본으로 전래되어서 오늘날 부국을 이루는 밭침이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몇가지 논리로 봤을때 그랬을 가정을 세울수도 있을거 같습니다.15시간 53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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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찡가로봇님의 댓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의 문화재)
1.양양 오산리 유적
종 목 사적 제394호
지 정 일 1997.04.18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60번지 외
시 대 선사시대
오산리 유적은 해안으로부터 육지 쪽으로 300여미터 떨어진 ‘쌍호’라 불리는 호수를 매립하여 농토로 사용하기 위한 토사 채취 작업 중 흙에서 다량의 토기와 석기가 발견되면서 유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지금으로부터 약 8천년전 신석기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으로 밝혀졌으며, 집터를 비롯하여 불을 피웠던 자리와 도구를 제작했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확인되었고, 덧무늬 토기 등 다양한 형태의 토기와 어로생활을 짐작케 하는 결합식 낚시(이음낚시), 그물추와 돌톱, 화살촉 등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특징적인 간석기도 함께 출토되었다. 이밖에, 신석기시대의 정신적인 측면을 살필 수 있는 흙으로 빚은 얼굴, 동물과 배를 형상화한 토우 등도 출토되어 신석기인의 종교관 등을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또한, 흑요석의 성분 분석 결과 백두산 지역에서 가져온 것으로 나타나 선사시대 백두산 지역과 오산리를 중심으로 한 동해안 지역의 문화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동북 지역과 남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위치한 오산리유적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으로서는 드물게 지층의 형성 순서가 뚜렷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신석기유적의 지역적 특징을 가진 토기가 망라되고 있어 동해안 선사문화는 물론 한국 신석기문화의 전반적인 흐름 파악과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의 기원과 주변지역 사이에 연결된 문화적 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2.양양 기구회첩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4호
지 정 일 2013.01.11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학포길33 (오산리 51)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책의 구성은 창립배경을 명시한 회첩서문과 세부 운영기준인 입령, 회원 좌목으로 되어 있고, 끝부분에는 후대에 작성된 발문이 있다. 서문에 중국 양양의 기구회를 본떠 본 기구회를 창립하였다는 설립 취지를 밝히고 있고, 영조 37년(1761)에 창립하였다는 ‘신사념’ 간기가 있어 제작 년대가 확실한 것으로 보여진다. 겉지와 속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속지는 동일 지질 16장과 창립이후 현재까지 회원을 추록하고자 추가한 2가지의 속지로 구분되어있어 총 3가지 지질로 구성되어있다. 좌목을 작성한 필체로 보아 창립회원은 20명으로 추정된다. 별록 2책, 기구계 수입ㆍ지출부 각 1책, 기구계 좌목 1책이 함께 있다. 기구회첩은 1761년 중국 양양의 기구회를 본떠 창립한 양양군 유지들의 친목모임인 기구회의 회첩으로 동명이지의 문화를 비교해볼 수 있고, 현재까지도 기구회의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어 지역의 미풍양속 등 향토문화의 계승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