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앨범에 빈 장면을 남겨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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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사진을 고를 때 우리는 늘 ‘가득 찬 장면’을 찾습니다. 활짝 웃는 얼굴, 반짝이는 조명, 풍성한 꽃길.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간이 흘러 가장 오래 머무는 이미지는 꽉 채운 장면이 아니라 ‘조금 비어 있는 순간’일 때가 많습니다. 신랑이 어색하게 넥타이를 매는 사이, 신부가 드레스 자락을 고르며 잠깐 숨을 고르는 장면, 아무도 포즈를 취하지 않은 그 틈새의 공기. 그 빈 장면들이야말로 진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웨딩앨범은 단순히 결혼식의 기록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로 약속한 하루’를 한 권의 책처럼 엮은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완벽한 페이지들로만 가득 채우면, 앨범은 오히려 숨 쉴 틈을 잃습니다. 페이지마다 인물과 장식이 꽉 차 있다면, 보는 사람의 마음도 금세 피로해집니다. 반면에 여백이 있는 사진은 시선을 멈추게 하고, 생각을 불러옵니다. 그 안에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들이 조용히 머뭅니다.


빈 장면은 결핍이 아니라 여운입니다. 그것은 “이날의 끝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여백의 언어이기도 하지요. 결혼식은 시작의 끝이자, 끝의 시작이니까요. 그래서 웨딩앨범 속 여백은 두 사람의 미래를 위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 그 앨범을 다시 펼칠 때, 그 빈 장면 위에 새로운 기억이 덧그려질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생기고, 가족이 늘어나고, 어느 날 문득 그 빈 장면이 ‘지금의 우리’와 이어지기도 합니다.


대전웨딩박람회 참가한 웨딩사진 작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좋은 사진은 순간을 잡는 게 아니라, 시간을 머물게 한다.” 완벽하게 세팅된 장면보다,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서 ‘사람의 표정’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약간의 여백, 약간의 불완전함을 남기는 웨딩촬영이 늘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포즈 대신 자연스러운 시선, 완벽한 조명보다 흐릿한 햇살을 택하는 식입니다.


결국 웨딩앨범은 ‘기억의 박람회’ 같은 것입니다. 여러 감정들이 부스처럼 늘어서 있고, 그 사이사이에 쉬어갈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여백이 바로 두 사람의 호흡이요, 결혼이라는 긴 여정의 쉼표입니다. 그러니 웨딩앨범을 고를 때 완벽한 장면만 찾지 마세요. 조금은 흔들리고, 조금은 비어 있는 페이지를 남겨두세요. 언젠가 그 자리가 두 사람의 또 다른 이야기를 품을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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