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근로시간 줄어도 임금 그대로?…“주4.5일제, 중기는 못 버텨”

본문

대선 공약 검증

대선 레이스 초반 ‘주 4.5일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공약으로 채택하면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30일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겠다”며 “4.5일제에 이어 장기적으로는 주 4일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앞서 주 4.5일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던 국민의힘 측은 “이재명식 4.5일제는 비현실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17463756609721.jpg

김경진 기자

양당의 주장은 차이가 있다. 국민의힘 안은 유연근로형 4.5일제다. 가령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에 4시간만 근무하는 형태다.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엔 변화가 없다. 이미 국내에서도 ‘○○데이’와 같은 명칭으로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시행 중이다.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공약이냐”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민주당 안은 간단치 않다. 법정 근로시간을 36시간으로 줄이겠다는 입장이어서다. 이 후보는 4.5일제를 언급하며 “기존의 임금 등 근로조건이 나빠지지 않도록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기업들은 ‘부담을 왜 기업에 전가하느냐’고 반발한다. 줄어드는 근로시간만큼 사람을 더 뽑거나,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소수 대기업을 제외하면 주 4.5일제를 실시하기 어렵다’(한국경영자총협회)는 게 대체적인 목소리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은 해외 생산 확대 등 대응 수단이라도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은 연장근로수당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17463756611126.jpg

김경진 기자

타이밍도 좋지 않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지금 한국 경제가, 기업이 근로시간 감축을 감당할 체력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짚었다.

해외 사례는 있다. 2015년 공공부문에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한 아이슬란드에선 근로자 삶의 질과 생산성이 향상됐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확인됐다. 아랍에미리트(UAE)는 2022년 연방 정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주 4.5일제(주 36시간)를 전면 도입했다. 다만 아이슬란드의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1.7% 수준이고, 인구도 40만 명에 불과하다. UAE는 대표적인 산유국이다.

다른 나라는 대부분 근로시간을 손대지 않고, 근로자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차원에서 주4~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벨기에가 2022년 공식적으로 도입했고, 영국·일본·뉴질랜드도 실험을 진행했다. 임금 감소를 동반하면 참여율은 크게 떨어진다. 스페인 통신사 텔레포니카는 2021년 임금 15%를 줄이며 근로시간을 단축하려 했지만,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전문가들도 장시간 근로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점엔 동의한다. 다만 ‘법정 근로시간이 아닌 실제 근로시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박 교수는 “실근로시간을 줄이려면 쉽게 말해 이번 주엔 일하고, 다음 주엔 쉬는 게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하루 근로시간이 한국과 똑같은 8시간이지만 6개월 평균 8시간이 기준이다. 일본 역시 연장근로 상한을 월이나 연 단위로 규정하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선거용으로 4.5일제를 앞세울 게 아니라 근로자의 재량권을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독일의 근로시간저축계좌제 같은 제도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고 밝혔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2,271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