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18세기 조선으로부터 350년, 이어지는 겸재 정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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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 아마 그의 이름은 잘 몰랐어도 그의 그림은 교과서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번쯤 봤을 법한 진경산수화의 대가입니다. 한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뒤 비에 젖은 인왕산 바위와 산 아래 낮게 깔린 구름이 조용히 분위기를 압도하는 ‘인왕제색도’나, 금강산 1만2000봉을 원형 구도의 부감법으로 거침없이 그려낸 ‘금강전도’는 일찍이 국보로 지정된 바 있죠. 겸재 정선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천을 개성 넘치는 필치로 생생하게 그려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정립하는 등 18세기 조선 회화의 전성기를 이끌며 후대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는 겸재 정선의 예술세계와 그 가치를 2회에 걸쳐 탐구해봤습니다.

① 조선 넘어 한국 회화사의 거장 ‘겸재 정선’ 예술세계로
② 18세기 조선으로부터 350년, 이어지는 겸재 정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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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년중앙] 조선 넘어 한국 회화사의 거장 ‘겸재 정선’ 예술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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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본 142점과 디지털 미디어 등을 활용해 겸재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꾸며진 겸재정선기념실 전경.

겸재 정선(이하 겸재)은 1740년부터 1745년까지 양천현령을 지냈어요. 양천현은 현재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일대로, 현대식으로 말하면 강서구청장으로 있었던 거죠. 겸재는 이 시기 70대의 나이로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등을 그렸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강서구에서 그의 예술 세계를 계승·재조명하고자 2009년 양천현아지와 가까운 곳에 겸재정선미술관을 개관했죠. 겸재정선미술관은 겸재 원화 27점을 비롯해 영인본 142점, 겸재 화풍을 이어받은 작가 작품 11점 등을 소장하고 관련 도서·자료를 꾸준히 수집·기록해 전시·연구·교육 활동을 펼치죠. 하연지 주무관은 “소년중앙 독자 또래 어린이·청소년에게 겸재를 알리고 진경산수화를 재조명하기 위해 매년 봄 유·초·중·고생 대상 전국 사생대회, 문화행사 등도 진행한다”며 “올해 20회를 맞은 사생대회는 5월 10일 마곡 어울림공원·궁산근린공원에서 열린다”고 귀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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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천현아가 있던 지역에 세워진 겸재정선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패널로 전시된 양천현아도.

겸재정선미술관에 가다 

미술관은 언제든지 겸재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겸재정선기념실·원화전시실과 각종 기획전이 열리는 제1·2 기획전시실 등을 갖췄고요. 진경문화체험실에서는 내가 그린 그림을 거대 스크린에 띄워 만드는 ‘Live(라이브) 양천진경’, 진경화첩 그리기, 한양진경 지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죠. 또 양천현아 모형도를 살펴보고 ‘독서여가도’처럼 꾸민 포토존에서 기념촬영도 할 수 있어요.
겸재의 생애와 작품 활동을 다섯 개 코너로 나누어 선보이는 겸재정선기념실의 경우 강서구 문화시설 통합운영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도슨트 해설과 함께 관람할 수 있죠. 기념실에 들어서면 먼저 양천현아 뒤편에 있었던 정자 이름을 딴 ‘정해헌 누마루에 앉아’란 미디어아트 영상을 통해 겸재가 바라봤을 풍경을 양천현아도 등을 통해 재구성해 볼 수 있어요. 이어 겸재의 대표작 4점을 소개하며 겸재가 그림으로 이름을 얻은 계기를 알려주고, 진경산수화로 그림의 새 지평을 열었음을 보여줍니다. 겸재의 금강산 그림과 실제 금강산 사진을 교차 구성한 ‘아, 금강산이로구나’ 영상을 보고 스승이었던 김창흡과 형제로 후원자 역할을 했던 김창협이 가을 금강산인 풍악산을 읊은 시를 읽으면 그 시절 문인 감성이 차오르는 듯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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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가 양천현령 시절 만든 ‘경교명승첩’ 속 명소는 터치스크린을 통해 그림과 실제 풍경, 제화시를 같이 볼 수 있다.

겸재는 양천현령뿐 아니라 현재 포항 지역인 청하현감, 대구·경산 일부인 하양현감 등 여러 지방에서 관직을 지냈는데요. 금강산 유람처럼 여행을 가기도 했지만, 지방에서 관직을 수행하면서도 주변 풍경을 많이 그렸습니다. 전시실에서는 금강산 유람 경로부터 겸재가 남긴 전국 각지 명승도 및 한양 명승도와 그 위치를 표시한 지도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요. 특히 한양의 경우 터치스크린을 활용해 지명을 누르면 실제 경치와 겸재의 그림, 곁들여진 제화시를 살펴볼 수 있게 마련됐죠. 이어 그의 대표작과 연보, 그에게 영향을 받은 화가들까지 차근차근 둘러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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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문화체험실에서는 내가 그린 그림을 거대 스크린에 띄워 만드는 ‘Live 양천진경’, 진경화첩 그리기(사진), 한양진경 지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

이수연 겸재정선미술관 학예사는 “이곳에 전시된 그림은 원화를 과학적으로 복제한 영인본으로, 진품에 비하면 훼손 가능성이 작아 조명이나 온습도 등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죠. “이어지는 원화전시실의 경우 미술관이 소장한 원화를 전시하는데, 그림의 상태에 따라 기본 3개월을 기준으로 전시가 교체되고, 혹시 모를 훼손을 막기 위해 조명 및 온습도 조절도 민감하게 관리하죠. 반면 기념실의 경우 그런 제약이 없어 비교적 가까이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어요. 또 다양한 작품을 압축해서 겸재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꾸몄기에 작은 것이라도 쉽게 알아갈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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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전시실에서는 현재 기획전 ‘아!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에 맞춰 금강산 관련 그림을 전시한다.

겸재로 추정되는 ‘독서여가도’의 주인공과 광주 정씨 가문 인물들을 토대로 2022년 박철종 작가가 그린 겸재 정선 진영의 경우 박 작가의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함께 전시 중이에요. 겸재 정선 진영을 지나면 원화전시실이 나옵니다. 겸재정선미술관에서는 개관 16주년을 맞이해 겸재 진경산수화에 주로 다뤄진 금강산을 주제로 한 특별 기획전 ‘아!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을 6월 25일까지 개최하는데요. 이곳에서는 특별전과 연계한 ‘금강예찬’전을 통해 ‘조어도’ ‘피금정도’ 등 겸재 작품 4점과 그의 화풍을 계승한 화가의 작품 2점을 같이 볼 수 있게 했어요. 특히 도암 신학권이 겸재의 그림을 모사한 ‘금강내산총도’는 현전하는 신학권의 금강산 작품이 4점뿐인 데다 그의 이름이 확인된 그림 중 제작 시기가 이른 주요 작품이라 의미가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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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정선미술관은 개관 16주년을 맞이해 겸재 진경산수화에 주로 다뤄진 금강산을 주제로 한 기획전 ‘아!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을 연다. 근현대 화가들을 중심으로 한 2부에 전시된 변관식의 ‘금강사계’(인주문화재단)는 총 6폭으로 구성된 산수화로 금강산의 사계절을 담았다.

‘아!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전시는 크게 조선시대 화가들이 금강산을 화폭에 재현하는 다양한 방식이 제시된 ‘성지에서 진경으로’, 근현대 화가들을 중심으로 한 ‘기억과 심상의 공간’으로 나누어 각각 제1·2 기획전시실에서 열립니다. ‘성지에서 진경으로’ 전시실에 들어서면 먼저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겸재정선화첩’을 찾아내는 계기가 된 노르베르트 베버의 『조선의 금강산에서』를 본 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영구대여 형식으로 반환된 ‘겸재정선화첩’의 ‘금강내산전도’를 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죠. 겸재와 현재 심사정의 작품을 모은 ‘겸현신품첩’에 실린 금강산의 내금강 명소 ‘혈망봉도’ ‘만폭동도’를 거쳐 김홍도의 ‘해동명산도’ 속 해금강 명소 스케치, 이풍익의 ‘동유첩’에 담긴 ‘총석정’ ‘수미탑’ ‘단발령’ 등을 보다 보면 각자 화풍은 다르지만 명승지이자 이상적인 성지로 여긴 금강산을 가까이 두고자 한 조선 선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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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풍익이 금강산을 유람한 후 제작한 일종의 시문(詩文) 화첩인 『동유첩』(성균관대학교박물관)에 실린 금강산 그림 28폭 중 ‘단발령’.

이러한 금강산의 여정과 함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변화합니다. 일제가 관광 개발하면서 겸재를 위시한 조선의 화가들이 그렸던 금강산 화첩은 일제가 만든 철도회사의 관광 홍보 엽서, 사진첩 등으로 변하며 그 이상적 가치가 흐려지고, 광복 이후엔 분단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땅이 됐죠. 이에 작가들은 현실이 아닌 내면의 꿈과 기억의 풍경으로 금강산을 그려냈고, 실경을 토대로 재해석·변형하며 그 아름다움을 복원해 왔어요. 변관식의 6폭짜리 사계절 산수화 ‘금강사계’, 이응노가 반추상 양식으로 꿈속에서 본 금강산을 그린 ‘몽견금강’, 겸재가 박연폭포를 그린 ‘박생연’을 떠올리게 하는 김호득의 ‘구룡폭’ 등이죠. 이 학예사는 황인기의 ‘오래된 바람’을 들어 “레고블록을 활용해 겸재의 ‘금강내산도’을 따라 만든 작품”이라며 “블록을 활용해 픽셀화한 디지털 산수화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죠. 이어 민화 속 금강산처럼 관념화된 봉우리를 그리면서도 손이나 발 모양 등 작가의 유머를 숨겨둔 김선두의 ‘금강지춘’을 소개하며 “18세기 겸재부터 2025년 현대 작가까지 금강산을 다룬 작품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금강산을 다시 호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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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블록으로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도’를 따라 만든 황인기의 ‘오래된 바람’은 디지털 산수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겸재정선미술관
장소: 서울시 강서구 양천로47길 36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3~10월, 11~2월 및 토·일요일에는 오후 5시까지, 1시간 전 입장 마감, 월요일·1월 1일·설날·추석 당일 휴관)
관람료: 성인 1000원, 청소년·군경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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