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 전시 보고 나면 중고 운동기계, 머리망이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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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아트바젤 홍콩에서 MGM 디스커버리상을 받은 신민. 사진 P21

두 전시를 보고 나면 마사지기, 머리망이 달리 보일 거다. 일상의 하잘것없는 물건에서 길어 올린 신세대 여성 미술가들의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펼쳐진다.

신민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 레이첼 윤 'No Sweat'

먼저 서울 이태원동 P21에서 17일까지 열리는 신민(40)의 개인전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이다. 10년가량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과 카페에서 일한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제목이다. "야근과 회식이 없고, 칼퇴근이 가능해 작업을 병행할 수 있으며 노동법을 준수해 월급을 떼먹지 않는 고마운 직장이었다"고 전시장에서 만난 신민은 돌아봤다. 제목은 "머리망을 하고 아무리 조심해도 실낱같은 머리칼이 나와 고객의 소리에 불만 글이 접수되고 CCTV로 머리카락의 주인이 누구인지, 최종 조리 노동자가 누구인지 찾아내 주의를 주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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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개인전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 전시전경. 사진 P21

누런 종이에 연필로 그린 얼굴들이 놀란 눈, 화난 표정으로 서로를 살핀다. 종이를 겹겹이 붙여 만든 인물 두상도 있다. 펜으로 한 올 한 올 그리거나 철사로 심은 머리칼은 단정하게 머리망에 넣었다. "나는 내 동료를 미워하지 않는다." 두상 안에 작가는 이렇게 소원을 적었다. "정신없이 감자튀김을 만들 때 신용카드로 계산대를 탁탁 치며 재촉하는 손님들보다, 어깨를 부딪치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료에 대한 미움이 샘솟는 저 자신이 부끄러워 매일 적고 다짐하듯 되뇌었어요." 불상을 만들 때 안에 관련 자료와 소원, 불경을 넣는 불복장 의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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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개인전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에 출품된 '음료 나가기 전에 이물체크 또 체크' 사진 P21

홍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청강과 독학으로 미술을 익혔다. 기름에 전 감자튀김 포대에 그림을 그리던 게 시작. 거칠어 보여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하다. "살아가면서 느낀 분노와 슬픔, 안쓰러움을 풀어내기엔 말발과 지식이 딸리지만, 이 문제들을 시각화했을 때 사람들에게 잘 전달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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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개인전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 출품작들. 냉동 감자튀김을 담은 누런 종이포대를 한 장 한 장 붙여 만든 조각 위에 연필로 그렸다. 사진 P21

신민은 지난 3월 아트바젤 홍콩에서 신진 작가에게 주는 ‘MGM 디스커버리 아트 프라이즈 어워즈’를 받았다. "내 작품이 해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궁금했는데, 홍콩에서도 머리망한 채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직장이든 학교든,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머리망이 있다. ‘머리칼 없는 멸균 상태’와도 같은 불가능한 미션에 괴로워하고, 동료들의 오해와 심술에 억울해한다. 그 공감의 지점에 신민의 인물상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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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운동기기와 조화로 만든 키네틱 조각에 둘러싸인 레이첼 윤. 사진 G갤러리

서울 삼성동의 지하 전시장에서 마사지기, 운동기기, 전동 육아용품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거기 연결된 축 늘어진 조화가 부르르 흔들리며 전시장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지갤러리(G Gallery)에서 31일까지 열리는 ‘노 스웨트(No Sweat)’다. 워싱턴대와 예일대(미술학석사)에서 미술을 전공한 한국계 미국 작가 레이첼 윤(30)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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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사지기, 하체를 강화해주는 운동용품에 조화를 올려 종일 덜덜거리는 레이첼 윤의 'Enraptured(황홀한ㆍ왼쪽)'과 'Beckon(손짓하다)'. 권근영 기자

7년 전 발 마사지기를 사용하면서 작업이 시작됐다. 지난달 29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마사지기는 몸에 맞춤해야 하는데, 그냥 굴러가기만 하고 (마사지는) 잘 못 하더라. 자기 일에 관심 없어 보이는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고 돌아봤다. 중고거래로 쓰다 만 운동기기나 전동 육아용품을 사 모았다. 아기를 흔들어 재우거나, 어깨를 마사지하는 등 사람의 팔다리를 대신해 움직이도록 고안된 작은 기계들은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힙한 몸매로 나를 바꿔주는 등의 이 자기 계발의 기기가 본래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한 채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원소유자의 기대는 어떻게 좌절됐을까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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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오리인형 세 마리 'No Pain No Gain'. 레이첼 윤은 "우리 가족의 자화상"이라며 "달리지 않고 끌려가는 세 번째 오리가 나"라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오리 장난감 세 개의 제목은 ‘No Pain No Gain(노력 없인 얻는 게 없다)’.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에요. 끝없이 노력해 더 나아져야 하는 게 이민자가 처한 상황이죠. 그렇지 못하면 실패로 치부되지만 살아가면서 느끼기에 이민자들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더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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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설치한 사우나실에 앉은 레이첼 윤. 권근영 기자

전시장에는 붉은 조명의 사우나실도 설치했다. 이곳의 기계들은 흐느적흐느적 느리게 움직인다. 한국과 미국의 찜질방을 다 가봤다는 그는 ”격렬한 체험이었다. 너무 뜨겁거나 찼고, 격하게 때를 밀었다. 쉼조차 일이 되는 곳”이라며 웃었다. 쳇바퀴 돌듯 단순한 움직임을 반복하는 기계들이 돌아가는 전시장은 실패한 위로가 쌓인 몸뚱이이자, 땀 한 방울 없이 가동되는 자기 개선의 풍경이다. "쓸모를 다하기도 전에 버려지는 기계들이 내키지 않는 출근, 사랑하는데 밀어내는 남자 친구, 언젠가는 소멸할 위기에 처한 우리를 닮았어요."

◇전시정보
▶신민 개인전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 17일까지 서울 이태원동 P21, 무료.
▶레이첼 윤 개인전 ‘No Sweat’, 31일까지 서울 삼성동 지갤러리,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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