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급여 탄 '실손 빼먹기'에 건보 재정 휘청…연간 부담, 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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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이 진료를 입간판으로 내세운 서울 시내의 한 정형외과 의원 모습. 뉴스1
비급여 진료 중심의 '실손보험 빼먹기'에 실손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도 크게 흔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손 가입에 따른 과잉 의료 행태가 두드러지면서 연간 최대 11조원의 건보 재정 부담이 발생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의료 과소비→의료비 증가→건보 재정 악화'의 악순환이 확인된 것이다.
감사원은 14일 건강·실손·자동차보험 이용 실태에 대한 감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감사는 그동안 지적이 이어져온 실손보험 확대에 따른 비급여 풍선효과와 건보로의 비용 전가, 보험금 누수 등을 파악하기 위해 이뤄졌다.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은 꾸준히 성장해 계약 건수만 3596만건(지난해 말)에 달한다.
감사원은 2018~2022년 실손보험 청구 건수(3억1300만 건)와 건보 청구 건수(4억7600만 건)을 연계·분석해 실손이 건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봤다. 실손 가입자-실손 비가입자, 실손 이용자(가입 및 청구)-실손 비가입자, 실손 이용자-나머지 그룹 등 3가지 유형으로 비교했다. 분석 결과, 실손 가입자는 모든 유형에서 비가입자보다 의료 이용이 더 많았다. 외래 진료는 가입자 1인당 연 2.3~7.7일, 입원은 1.5~7.1일 추가로 이뤄졌다.

김경진 기자
이는 곧바로 건보 재정에 독이 됐다. 실손 가입자의 추가 의료 이용으로 2022년 한 해에만 총진료비가 최소 12조9400억에서 최대 23조2800억원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 비용(건보 재정 부담)도 연 3조8300억~10조9200억 원 불었다.
10조9200억원은 22년 전체 건보 급여비(83조4700억원)의 13% 수준이다. 실손 가입자가 비가입자와 동일한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이용했다면, 이만큼의 추가 지출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란 의미다. 일부 환자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에 다른 실손 가입자뿐 아니라 전 국민이 적용되는 건보까지 안 써도 될 돈이 늘어난 셈이다. 이는 건보료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실손보험이 주로 보장하는 비급여 진료가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늘린다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 셔터스톡
특히 실손이 주로 보장하는 비급여 진료가 건보 재정을 대거 갉아먹었다. 22년 실손 이용자와 비가입자를 비교했더니 물리치료 등 상위 9개 비급여에서 진료비 3조5201억원이 추가로 나왔다. 그 중 진찰·입원료 등 건보 부담분도 7210억원이었다. 이번 분석에서 제외된 비급여 항목까지 포함하면 건보 재정 부담은 더 커진다.
구체적으로 도수치료 등 물리치료 이용률은 실손 이용자가 실손 비가입자의 1.5배(외래), 3~4배(입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연 6181억원의 추가 건보 지출이 이뤄졌다. 백내장 수술 환자의 비급여 진료비도 실손 이용자가 비가입자의 2.1배였다. 건보 추가 지출분은 665억원으로 집계됐다.
실손보험 청구·지급 과정의 문제도 드러났다. 같은 진료인데도 건보공단, 실손보험사에 각각 다른 상병 코드를 적용해서 비용을 청구한 사례가 절반 가까운 46.5%(2018~2022년)였다. 이러한 청구에만 실손 보험금 10조6000억원이 지급됐다. 실손 보험금만 청구하고 건보엔 청구하지 않은 사례도 5년간 730만건에 달했다. 여기엔 코 성형 후 비염 치료 명목을 내세우거나 피부 미용 시술 후 도수치료인 것처럼 청구하는 식의 '보험사기' 의심 사례가 포함됐다.

김경진 기자
실손 가입자들에게 건보 본인부담상한제 환금금과 실손 보험금(급여 본인 부담금)이 이중 지급되는 문제도 재차 확인됐다. 본인부담상한제는 건보 가입자가 1년간 낸 본인 부담금이 소득에 따른 일정 기준액을 초과하면 다음해 환급해주는 제도다. 2019~2022년에만 이런 환급금을 감안하지 않은 보험금 8580억원이 지급됐다. 이중 지급을 막았다면 실손 손해율이 2.3%포인트 감소하고, 연간 실손 보험료 2232억원을 인하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법적 근거 미비로 선량한 실손 가입자들이 피해를 보는 셈이다.
이번 감사를 두고 감사원 관계자는 "보험 재정 누수 방지, 의료비 지출 합리화를 유도하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3월 발표한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에서 시장 자율에 맡겨진 비급여의 가격·진료 기준을 설정하는 '관리급여' 신설, 급여 진료시 실손 자기부담금 조정 등의 계획을 내놨다. 복지부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참조해 의료개혁을 차질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손을 자양분 삼아 건보까지 위협하는 과잉 의료를 잡으려면 비급여 관리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정부는 일부 비중증 과잉 비급여만 뽑아서 관리하자는건데, 그렇게 해선 과잉 의료와 건보 재정 낭비 등을 막기 어렵다. 급여·비급여 병행진료를 규제하고, 비급여 가격·횟수 등을 제한하는 쪽으로 빠르게 가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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