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1·2심 판사가 판결문 '법령적용' 누락 실수…황당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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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지난 1일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혐의로 하급심에서 벌금 500만원이 선고된 의사 이모씨의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하급심 판사들이 판결문에서 법령의 적용을 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하급심 판사들이 판결문에 법령 적용을 누락해 대법원이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발생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혐의로 의사 이모(45)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지난 1일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직권판단에서 “원심은 피고인에 대하여 유죄 판결을 선고하면서 그 이유에 법령의 적용을 누락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며 “원심판결은 형사소송법 제323조 제1항을 위반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사유를 밝혔다.
형사소송법 323조 1항은 “형의 선고를 하는 때에는 판결 이유에 범죄될 사실, 증거의 요지와 법령의 적용을 명시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은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는 이씨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사소송법 323조 1항은 “형의 선고를 하는 때에는 판결 이유에 범죄될 사실, 증거의 요지와 법령의 적용을 명시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해당 내용이 판결문에 적혀 있지 않으면 법률 위반이다. 사진 최정규 변호사 제공
1·2심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이씨는 지난 2019년 2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경기 안산시의 A 정신병원에서 병원장으로 근무했다. 이씨는 A 정신병원 소속이었던 간호사 손미영(60)씨가 공익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손씨를 외래 간호 업무로 전보 조치하고, 총 6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린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손씨는 “다른 간호사가 의사 지시 없이 입원 환자를 격리 조치했다”며 경찰에 신고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사건을 직권조사한 인권위는 2021년 2월 병원에 인권침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재판부는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이씨에게 지난 2023년 5월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제9형사부도 “피해자의 신고가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고 양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지난 1월 기각했다. 하지만 두 재판부 모두 판결문에 기재해야 하는 ‘법령 적용’ 부분을 누락하는 이례적인 실수를 했다.
엉뚱한 이유로 파기환송 판결문을 받아든 피해자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손씨는 “판사들의 잘못으로 파기환송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령 적용은 판결문 작성의 기본 중 기본”이라며 “1심도 문제지만 항소심조차 바로잡지 못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공판4부는 앞서 공소를 제기한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이 공소장을 잘못 작성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22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 A씨의 재판에서 공소취소장을 제출했다. 연합뉴스
검찰, 다른 사람 범죄 혐의로 공소 제기했다가 취소
최근 검찰에서도 공소장 오기(誤記) 사례가 생겼다.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검 공판4부는 B씨의 마약류관리법 위반 사건을 맡은 재판부에 공소취소장을 제출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가 약물중독 재활 프로그램을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벌금 1000만원에 약식기소된 50대 B씨 사건의 공소장을 잘못 작성했기 때문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B씨의 직업란에는 무직이라고 기재돼 있다. 그런데 검찰은 공소사실 부분에 B씨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성형외과의원 대표 원장으로 근무했다고 적었다. 또 그가 2020년 1월부터 2023년 5월까지 향정신성의약품인 프로포폴을 수백 차례 투약·구입하고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B씨가 항의했고 검찰은 오류를 확인한 뒤 공소 취소를 결정했다.
간호사 손씨의 사건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판결문과 공소장을 보면서 오타·오기를 발견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판·검사들이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린 정치인 사건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사건도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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