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더버터] “기아종식의 가장 큰 걸림돌은 ‘편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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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모 컨선월드와이드 한국 대표 인터뷰

이준모 컨선월드와이드 한국 대표는 “기아종식이란 궁극적으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김용재 기자
‘한국을 도와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1961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발간한 보고서에 적힌 문장이다. 한국전쟁 이후 극심한 기아(굶주림)에 시달리던 한국을 돕기 위해 미국은 막대한 공적개발원조(ODA) 기금을 쏟아부었다. 보고서에는 대규모 원조에도 개선되지 않는 한국의 기아 문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담겼다.
“결과적으로 보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로 보였을 거예요. 굶주린 사람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한국 사람들은 의지가 없고 게으르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7일 만난 이준모(50) 컨선월드와이드 한국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컨선월드와이드(이하 컨선)는 기아 문제에 집중하는 국제인도주의 전문기관이다. 남수단·소말리아·에티오피아·예멘 등 컨선이 지원하는 나라 대부분 전후 한국과 닮았다. 이준모 대표는 “한국이 원조를 기반으로 자립해 선진국이 된 것처럼 이 나라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서 “기아에 대한 오해와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어서려고 애쓰는 사람들
- 어떤 오해가 있나요.
- “한국 사람들은 기아를 잘 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제로는 기아가 발생하는 구조나 원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기아를 돕는다’는 게 무엇인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도 잘 몰라요.”
-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 “기아나 빈곤이 개인의 무능이나 게으름 때문이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나태해서 가난해진 게 아니라 사회 환경적 요인 때문에 가난해집니다. 케냐의 투르카나라는 지역에 간 적이 있었는데, 기후변화 때문에 다섯 번의 우기가 비 한 방울 없이 지나가 버린 곳이었어요. 가축도 다 말라 죽었죠. 수단과 예멘처럼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역, 정치적으로 불안한 지역도 마찬가지예요.”
- 그런 상황에서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죠.
- “그렇습니다. 굶는 사람을 도와준다고 하면 누워있는 사람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 누워있는 게 아니에요. 일어서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죠. 조금만 손잡아 주고 도와주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 수십 년간 국제사회가 노력한 끝에 빈곤 문제가 많이 해결됐다고 들었어요.
- “분명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6년까지만 해도 기아가 급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었죠. 2000년 ‘심각’ 수준이던 세계기아지수가 2016년 ‘보통’ 수준으로 내려왔으니까요. 하지만 코로나를 기점으로 분쟁이 심화되면서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기아 상황이 다시 ‘심각’ 수준에 빠졌어요. 이 와중에 최근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국제개발처를 폐쇄하면서 구호개발 예산이 크게 줄었습니다.”
- 쉽지 않은 상황인데 도울 방법이 있을까요.
- “기아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급성’ 기아와 ‘만성적’ 기아. 급성 기아는 갑작스러운 식량 부족으로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전쟁·지진·홍수 등이 원인일 수 있죠. 이런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장기화되는 것을 만성적 기아라고 합니다. 만성적 기아는 ‘개발협력’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게 중요해요.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거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것
- 컨선의 사업 중에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 “컨선이 케냐 나이로비 비공식정착촌에서 진행한 영양간식 사업이 좋은 케이스죠. 이곳에 거주하는 아동의 3분의 1이 영양실조를 앓고 있었어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협력해 영양가 높은 ‘길거리 음식’을 개발해 보기로 했습니다. 케냐 식품업체들을 대상으로 해커톤을 열어 가격 대비 영양이 풍부한 반죽을 개발했어요. 이 반죽을 현지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길거리 음식 ‘차파티’로 만들어 노점상에 공급해 주민들의 영양상태를 개선했죠.”
- 재밌는 사업이네요.
- “에티오피아에서도 여러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특히 극빈층 여성을 대상으로 소액대출사업을 했는데 여기서 만난 아베라시(가명)라는 여성이 기억에 남아요. 보통은 빌린 돈으로 닭을 사고, 새끼 염소를 사고, 소를 사는 식으로 돈을 불리는데 아베라시는 소 대신에 발전기를 샀습니다. 쓰고 남은 전기를 이웃에 팔아 수익을 창출했어요. 놀라운 일이죠.”
- 기아에 처한 사람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네요.
- “중요한 지점을 얘기해 주셨어요. ‘셀프 헬프(Self-help)’라고 하죠.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도움을 받아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거죠. 컨선이 ‘수혜자’라는 말 대신 ‘참여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 컨선월드와이드 한국사무소가 설립된 게 언제인가요.
- “2015년에 설립해 올해 10주년이 됐어요. 지난 10년간 일관되게 ‘기아종식’이라는 메시지를 한국 사회에 전하고 있습니다. 기아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죠.”
UN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7억3300명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세계 인구 11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숫자다. 아프리카에서는 5명 중 1명이 영양실조 상태다.
“굶주림은 사람을 가장 처절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만듭니다. 기아를 단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아종식이란 궁극적으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먹을 것이 없다는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죠.”
- 한국이 국제사회에 기여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컨선 본부에 방문했을 때 아일랜드의 히긴스 대통령을 두 번 만났습니다. 기아와 빈곤, 인도주의에 대해 NGO에 근무하는 저보다 더 전문적인 지식과 식견을 가지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아일랜드 국민도 인도주의에 관심이 높습니다. 늘 세계정세를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역할을 찾으려 하죠.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관심이 부족합니다. 한국은 경험과 영향력을 모두 가지고 있어요. 아프리카 등 개발협력이 진행되는 나라에서는 이미 한국이 ‘롤모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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