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더버터] "조금씩 나눠보세요, 멈추지 않으면 평생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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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부자들 한병수·김은희씨 부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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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오래 기부하는 게 우리의 방식”이라는 한병수·김은희 부부는 30년간 국내 아동을 지원해 왔다. 김용재 기자

어렵게 얻은 아이였다. 30년 전, 한병수(68)·김은희(66) 부부는 쌍둥이를 품에 안았다. 결혼 10년 만이었다. “벽에 대고라도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는 젊은 부부는 그 마음을 담아 월드비전에 정기후원을 시작했다. 연말이나 후원 아동의 생일, 졸업식일 때면 선물을 보냈다. 큰돈을 낸 적은 없었다. 대신 30년을 쉬지 않았다. 최근 서울 강남구 자택 인근 카페에서 만난 부부는 말했다. “기부를 크게 하지 않아도, 멈추지 않으면 오래갑니다.”

-왜 기부였습니까.

▶김은희(이하 김)=아이들을 낳고 나니까 세상에 너무나도 고마운 거예요. 종교도 없는데 어디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요. 그러다 어느 방송에서 정기기부 이야기가 나오길래 ‘우리도 해보자’고 남편에게 말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평소 기부를 했었나요.

▶한병수(이하 한)=거제 조선소에서 일할 당시 ‘애광원’이라는 장애인 거주 시설에 기부도 하고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됐죠. 아내가 월드비전이라는 단체를 알아봐서 함께 시작하게 됐죠.

-국내 아동만 쭉 후원해 왔습니다.

▶김=그때만 해도 월드비전에서 후원 아동을 배정해 준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국내 아동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주변에도 어려운 아이들이 많으니까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죠. 그 아이가 자라서 어느 날 성인이 되어 독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뿌듯했죠. 벌써 4명째 아이를 만났어요.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습니까.

▶한=아이 생일이나 연말에 자필 편지를 보낸 적이 있어요. 답장이 오면 그렇게 반가워요.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결국 성인이 되어 독립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찡해요. 그제야 ‘이 아이가 무사히 잘 자랐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요. 우리가 키운 건 아니지만 긴 시간을 함께 걸어왔다는 느낌이랄까요.

-30년간 후원을 이어오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한=‘기부를 그만해야 하나’라는 고민은 한 번도 안 했던 것 같아요. 큰돈이 아니어서 오래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죠. 언젠가 물가는 이렇게 오르는데 기부액은 그대로라는 생각으로 증액한 적이 있습니다.

-퇴직 후에도 후원을 계속 이어가셨다고요.

▶김=많은 금액을 못 할 뿐이지 바뀐 건 없어요. 오히려 생활이 조금 더 단순해지니까 오히려 ‘기부는 계속해야지’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요즘 아기 돌보는 일을 하는데, 젊은 엄마들에게 가끔 이야기해요. ‘기부 한번 해보면 생각보다 기분 좋다’고요.

-자녀들에게도 기부 이야기를 하시나요.

▶한=종종 이야기해요. 누굴 돕다 보면 보람을 느끼게 되는데,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감정인 거 같아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한테도 기부를 가끔 권해요. ‘엄마·아빠가 죽으면 너희가 이어서 하라’는 식으로요. 강요해서 되나요. 자연스럽게 배웠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기부 외에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신 적이 있나요.

▶한=꼭 돈을 기부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시간을 쓰는 것도 나눔이라고 생각해요. 직장 다닐 때 임직원 봉사활동에 꼭 참여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아내도 동네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어요.

-장애인 시설 봉사인가요.

▶김=그땐 부녀회에서 함께 모여서 봉사를 나갔어요. 처음에 몸이 불편한 사람들 식사를 돕는 일을 부탁하는데 못 하겠다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게 지금도 기억나요. 40년 지났는데요. 그런데 봉사도 하니까 늘더라고요. 이후론 청소도 하고 허드렛일도 맡아 했어요.

-두 분이 나눔을 통해 느낀 변화는 무엇인가요.

▶김=누군가를 돕자고 시작한 일인데, 돌아보면 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어요. 누굴 위해서 하는 것 같지만,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거예요.

▶한=솔직히 특별한 결심이랄 건 없어요. 그냥 ‘자동이체 해놨으니 계속되는 거지’ 하면서 살아온 거죠. 그런데 정기기부 결정이 우리 삶에 한가지 기준이 됐던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들고 바쁜 생활이라도 ‘기부만큼은 해야지’ 같은 그런 거요.

-기부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한=무언가를 바라고 시작하진 마세요. 그럴 거면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나눔은 결국 나를 위한 일입니다. 나 스스로가 기분 좋고, 살아가는 데 의미를 더하게 되죠.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래서 한 번은 경험했으면 해요.

▶김=무리해서 큰 금액을 기부하라는 건 아니에요.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요. 5000원도 좋고, 1만원도 좋아요. 그렇게 적게라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바로 정기기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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