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송비 뜯고 잠적한 '김민경 변호사'…알고보니 사칭 사기였다

본문

17475995553443.jpg

지난달 페이스북에 올라온 대한법률구조공단 사칭 광고. 2016년 신규 입사한 변호사들이 경북 김천시 소재 본부의 아트월 앞에서 찍은 기념 사진을 도용했다. 벽에 적힌 ″가족처럼 따뜻하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문구는 사칭범들이 인위적으로 삽입한 것이라고 한다. 사진 페이스북 캡쳐

지난달 28일 경북 김천에 위치한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 “김민경 변호사가 있느냐”고 묻는 민원인 A씨가 방문했다. A씨는 앞서 사기를 당해 1억원의 피해를 본 상태에서 “법적 대응을 도와주겠다”는 페이스북 광고를 봤다고 했다. 광고에 등장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김민경 변호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소송 비용 2600만원을 이체했지만 이후 연락이 끊겨 김천 본부까지 온 것이었다.

공단에는 이로부터 약 3주 전에도 김민경 변호사를 찾는 전화가 왔다. 사기 피해자였던 B씨도 페이스북에서 자신을 김 변호사라고 소개하는 이의 광고를 봤다. B씨는 “전체 소송 비용 7000여만원 중 5000만원은 공단이 대납하지만 나머지 금액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2000만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연락은 끊겼고 돈도 돌려받지 못했다.

범죄 피해자에게 변호사라고 속이며 접근해 금전을 뜯는 사기가 유행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보이스피싱 조직이 ‘김미영 팀장’을 내세워 대출·예금 등을 안내하는 척하고 사기를 벌인 것처럼, ‘김민경 변호사’를 사칭해 범죄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범죄가 기승이다. 변호사 이름뿐 아니라 사진, 서류까지 도용하는 등 수법은 더 고도화하고 있다.

17475995555555.jpg

대한법률구조공단 사칭범의 페이스북 페이지. 메시지를 보내면 사기 범죄의 법적 대응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페이스북 계정은 '남성 의류 매장'으로 등록됐다. 사진 페이스북 캡쳐

자신의 이름과 사진이 도용당한 김민경 법무법인 에스엔 변호사는 지난 1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주말, 새벽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많게는 세 통씩 ‘김민경 변호사가 맞느냐’는 전화를 받는다. 그때마다 사칭이라고 확인시켜준다”며 “지금까지 받은 피해자 전화만 수백 통에 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1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김 변호사는 서울남부지법과 대법원의 국선변호인, 서울 종암경찰서 수사 민원상담센터의 상담변호사 등을 지냈다. 그런 김 변호사의 신분증과 명함 등을 사칭범들이 도용해 피해자를 속인 것으로 나타났다. 마침 법률구조공단에 또다른  동명이인의 김민경 변호사가 재직 중이어서 피해자들이 더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사칭범은 변호사인 척 피해자들이 보낸 사기 피해 내역 등 자료로 ‘사건 조사 보고서’ 등 서류를 그럴싸하게 만들어 안심시킨 뒤, 라인(LINE) 등 메신저로 금전 또는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를 요구했다고 한다.

17475995557561.jpg

대한법률구조공단 사칭범과 대화. 본인의 소속을 '대한법률구조공단'이라고 했다가 '대한법률구조단'이라고 한 차례 잘못 얘기한다. ″우리는 당신의 사건이 초국가적 범죄인지 아닌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라며 번역투로 얘기하기도 한다. 계정의 프로필 사진은 올해 초에 임기가 끝난 제52대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인단의 단체 사진을 도용한 것이다. 사진 페이스북 캡쳐

진짜 김 변호사의 사무실에 연락해 확인 뒤 돈을 이체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사칭범들로부터 “돈을 보내기로 해놓고 왜 이제 와 말을 바꾸느냐”는 말과 함께 가짜 민사 소송장을 받기도 했다. 변호사는 “소장을 처음 받아 본 피해자들은 엄청난 당혹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사칭범들이 피해자들을 협박까지 하니 이제 더는 이런 범죄를 좌시할 수 없는 수준에 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페이스북 등 SNS의 광고 업로드 기준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법 목적의 광고 글이 아예 등록·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해 11월 메타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사칭하는 계정 4개를 삭제했지만 최근 새로운 계정이 또 등장해 공단에서 재차 모니터링·삭제 요청을 했다고 한다.

17475995559401.jpg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사칭 주의 안내문. 사진 대한법률구조공단

페이스북 운영사인 메타의 한국법인은 광고 등록 시 사업자등록증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현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시스템이 완성되더라도 해외에서 등록된 불법 광고는 차단하기 어렵다고 한다.

경찰 출신인 이준혁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페이스북이 AI(인공지능) 등으로 불법 광고를 사전에 차단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사칭 계정·광고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사기죄의 구성 요건인 기망 행위가 성립해 범죄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경 변호사는 “온라인 금융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보다 면밀한 정보 확인이 필요하다”며 “법무법인이나 대한변호사협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변호사의 사무실 정보 등을 확인하고 변호사와 직접 만나 상담을 받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2,828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