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신뢰 갉아먹어” “6·25때 적국”…미·중 끌어들이는 후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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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열린 첫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미국과 중국이 공방의 소재로 소비됐다. “미국은 신뢰를 갉아먹어 오래가지 못할 것” “중국은 6·25 전쟁 당시의 적국” 등 새 정부 출범 이후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는 발언이 이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에 대해 설명하다 “지금처럼 소프트파워를 다 갉아먹으면서 미국이라는 신뢰, 믿음 이런 걸 다 갉아먹으면 오래 못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어느 시점에선 제동이 걸릴 텐데 그때까지 잘 견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맨 먼저 나서서 서둘러서 협상을 조기 타결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대미 수출 감소 등이 지표로 뚜렷하게 확인되는 가운데 ‘버티는 게 협상 전략’이라는 취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중국처럼 미국이 입장을 바꾸도록 자기 출혈을 감수하는 ‘치킨게임’을 버틸 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한·미 동맹,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완전히 몰빵, 올인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또 대만 유사시에 대해 “우리가 너무 깊이 관여할 필요가 없다.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기존의 “중국에도 셰셰(謝謝, 고맙다) 하고 대만에도 셰셰 하고 다른 나라하고 잘 지내면 된다”는 발언 취지를 유지했다.

실용외교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국제 질서가 이미 미·중을 필두로 뚜렷하게 진영화된 마당에 한국이 모든 나라와 두루 잘 지내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후보는 19일 서울 용산역 선거 유세 중엔 “북한이 왜 휴전선에 장벽을 쌓나. 남쪽에서 탱크로 밀고 올라갈까봐 무서워서 탱크 장벽 쌓은 거 아니겠느냐”며 “(윤석열 정부가) 아주 오랫동안 북한을 자극했는데 북한이 눈치를 채고 잘 견딘 것”이라고 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TV토론에서 “6·25(전쟁) 때도 중국 공산당은 우리를 쳐들어와서 우리 적국이었지 않습니까”라며 “미국은 우리를 도와줘서 대한민국을 지킨 당사자 아닙니까. 미국과 중국이 같은 수준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이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후 한·중은 1992년 국교를 정상화했고 지금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다. 한·미 간 혈맹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70년 전  전쟁을 끌어와 중국을 ‘적국’으로 묘사할 이유가 있느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 후보는 또 “비핵화는 지금 매우 어려운 상태”라며 “핵 균형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사회 일각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가 갈수록 흐려진다는 걱정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의 유력 대선주자가 비핵화에 회의적인 것처럼 읽힐 수 있는 발언을 한 건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핵 균형” 발언은 한국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핵무장을 시사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김 후보가 앞서 전술핵 재배치, 미국과 협의를 통한 핵무기 설계 기술 축적 등을 언급한 맥락과 맞물려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셈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대선 기간 후보들의 모든 발언은 외교 자산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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