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동호’ 엄마 45번째 5·18…“한강 작가, 아들의 그 때 되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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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일본인 참배객과 만나는 김길자 여사(오른쪽). [뉴시스]

“45년간 아픔만 줬던 5·18이 올해는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주는 날이 됐네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고(故)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84) 여사가 1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들 얘기를 써줘 정말 감사하다. 그 고마움을 100번 말해도 부족하다”고 했다. 문 열사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속 주인공 ‘동호’의 실제 인물이다.

문 열사는 5·18 당시 광주상고(현 광주동성고) 1학년 재학 중 학생 시민군으로 참여했다. 그는 국민학교 동창인 양창근 열사가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머니의 만류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문 열사는 1980년 5월 27일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숨졌다. 그의 사연은 『소년이 온다』에서 친구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도청에 남은 주인공 ‘동호’의 모티브가 됐다.

김 여사는 지난 18일 기념식에 참석한 뒤 아들의 묘역을 찾았다. 그는 아들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5·18민주묘지를 찾은 일본인 추모객들을 맞이했다. 일본 내 한국현대사연구회 소속인 추모객 20여명은 『소년이 온다』를 읽고 5·18을 참배하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

김 여사는 일본인 참배객들에게 “(80년) 5월 25일 집에 가자고 재학이를 데리러 갔는데 ‘친구가 죽어서 집에 못 간다’고 하더라. 26일에 또 데리러 갔는데 그땐 ‘막차를 타고 가겠다’고 하길래 되돌아왔다. 결국 27일 죽었다는 소식을 나중에야 들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여사의 말을 들은 일본인 추모객 후카츠 아츠코(71·여)씨는 “너무 슬프다. 내년에도 광주에 오겠다”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김 여사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을 마주했던 45년 전을 어제 일처럼 회상했다. 그는 “(아들이 숨진 지) 열흘이 지나서야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처참해 ‘내 아들이 맞나’ 싶었다”며 “재학이를 보내고 지난 45년간 딸과 함께 살면서도 한 번도 그 때를 잊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김 여사는 “올해 5·18은 슬프기만 했던 예년과 달리 기쁜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마다 5월 18일만 되면 아들이 보고 싶어 가슴이 찢어지도록 힘들었다”며 “하지만 올해는 아무 연고도 없는 외국인들이 찾아와 아픔을 함께 나눠줘서 감사했고, 따뜻한 하루를 보냈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한강 작가에 대해 “소설을 쓰기 위해 만나러 온 적이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2012년쯤 광주 효동초교 인근의 집을 찾아온 한강 작가에게 아들이 5·18에 참여하게 된 이유와 시신을 찾은 과정 등을 설명해줬다고 한다. 김 여사는 “한강 작가 덕분에 5·18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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