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1년 끈 '533억+a' 담배소송, 뒤집히나?…암·흡연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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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편의점의 담배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국민 건강권이냐, 기업 활동의 자유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 3곳(KT&G·한국필립모리스·BAT코리아)에 제기한 흡연 폐해 손해배상 소송(담배소송)이 11년 만에 반환점에 다가섰다. 오는 22일 최종변론을 거쳐 조만간 항소심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주요 쟁점을 두고 소송 당사자들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전문가·학계 지지를 업은 건보공단이 1심 판결 뒤집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담배소송 대상 액수는 건보공단이 30년 이상 흡연 후 폐암·후두암 진단을 받은 환자 3465명에 지급한 진료비 533억원이다. 하지만 공단 안팎에선 소송 결과가 국민 건강권과 담배 규제 정책 향방을 가늠할 수 있어 533억을 훌쩍 넘는 의미를 지닌다는 평이 나온다.

재판은 2014년 시작됐다. 핵심 쟁점은 ▶담배회사의 제조물 책임·불법행위 여부 ▶암·흡연의 인과성 ▶공단의 직접청구 여부와 손해액 범위 등 3가지다. 공단 측은 건강상 피해가 담배로 발생한 게 분명하고, 이를 제조·수입 판매한 담배회사는 담배 관련 위험성을 낮추려 하지 않은 등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담배업계는 흡연 이외 다른 발병 요인이 없다는 점을 공단이 입증해야 하며, 법령이 요구하는 위험 표시 의무 등을 준수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소송 제기 6년 만인 2020년, 1심 재판부는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건보공단이 즉시 항소하면서 항소심 변론이 2021년부터 11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이제 남은 건 최종변론(12차)과 연내로 예상되는 선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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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특히 공단은 1심 패소를 뒤집기 위해 암·흡연의 인과성 입증에 집중하고 있다. 당시 재판부가 환자들에 생활습관, 가족력 등 다른 위험 인자가 없다는 사실을 추가로 증명해야 한다고 지적한 걸 고려했다. 이에 따라 흡연 외에 암 위험 요인이 없는 환자 1467명을 추린 뒤 서류를 다시 제출했다. 이번 달엔 폐암·후두암 발병에 유전적 요인의 영향이 1% 아래로 미미한 반면, 흡연 기여도는 절대적이란 연구 결과도 내놨다.

임현정 건보공단 법무지원실장은 지난주 토론회에서 "1·2심을 합쳐 495건의 자료를 제출했고, 소송 대상 환자 의무기록도 3000명 넘게 확보해서 냈다"면서 "국민 건강권도, 기업 활동 자유도 모두 중요하지만 건강 침해가 뚜렷하다면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릴 수밖에 없다. 재판부가 자료를 제대로 판단해달라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밝혔다.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22일 최종변론에 직접 참석해 담배 폐해와 담배회사 책임을 마지막으로 강조할 예정이다. 정 이사장은 앞서 11차 변론에서 "담배가 일으킨 중독·질병에 대해 담배회사 책임을 묻지 않는 건 피해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권을 부정하는 중대한 오류가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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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 1월 1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건보공단 담배회사 상대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11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 단체·기관들도 건보공단 지지에 나섰다. 국립암센터와 17개 보건의료단체는 지난 8일 성명서를 통해 "담배 회사는 흡연·질병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허위 주장을 반복해 왔다"면서 "흡연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담배 회사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중독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대한폐암학회 등도 "흡연은 직접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폐암의 원인이다. 담배가 일으키는 중독과 질병에 대해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사회 정의를 요구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신종 담배에 노출된 청소년 등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공단의 승소가 필요하다고 본다. 김현숙 신한대 간호학과 교수(대한금연학회장)는 "담배회사는 기성세대에 이어 청소년·여성 등 미래 고객까지 확보하기 위한 신종 담배를 계속 만들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경각심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흡연에 따른 건보 진료비 지출은 3조8589억원(2023년)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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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의 한 빌딩 흡연구역에서 관계자가 '금연구역 지정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뉴스1

앞서 국내에서 개인이 제기한 담배소송은 모두 원고 패소로 마무리됐다. 반면 미국·캐나다에선 주(州) 정부, 흡연 피해자 등이 담배회사와 수십~수백조원 규모 배상금에 합의하며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아직 재판부에서 합의 관련 언급이 나온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현실적으로 1심 판결의 법리를 확 바꾸기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담배업계 내부고발 등 새로운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없어서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3465명이 특정 회사 담배 제품을 이용했다가 암에 걸렸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 각사 내부 문건 확보도 안 되니 제조물 책임 입증은 더 어렵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국민 상당수는 KT&G가 여전히 공기업이라고 생각하는 등 담배 폐해 관련 정보가 부족하다. 이를 정확히 알리고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담배 회사들은 이번 소송과 관련해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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