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백동 공예의 은은한 아름다움, '협업'의 힘으로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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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노_백동 선각 희자문 함( 白銅 線刻 囍字文 函), 황동과 백동, 27.8x15x7(h)cm. [사진 박여숙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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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 선각 희자문 팔각함(白銅 線刻 囍字文 八角函), 2024, 백동과 황동,24.6 x 24.6 x 9(h) cm [사진 박여숙화랑]

백동은 구리와 니켈을 합성한 금속으로, 조선시대 말기에는 백동을 소재로 비녀, 촛대, 화로, 담뱃대 등 공예품이 제작됐다. 백동은 은빛을 내면서도 강도가 높고 산화되는 속도가 더딜 뿐만 아니라 광택이 잘 유지되는 장점 때문에 장신구나 생활용품의 소재로 인기가 높았으며, 이를 다루는 기술은 한때 중요한 금속 공예 기술이었다. 그러나 과거에 쓰이던 비녀와 촛대, 화로가 실생활에서 쓸모가 없어지며 공예 기술도 차츰 잊혀가고 있다.

박여숙 화랑 '이경노 백동 공예전' #소박한 멋 살려 현대 실용품 제안#화랑 대표와 전통 금속 장인 협업#7년 만에 두 번째 성과 전시 중

서울 이태원 박여숙화랑에서 열리는 '두 번째 박여숙 간섭 이경노 백동 공예전'(6월 13일까지)은 요즘 보기 드문 백동 공예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는 전통 공예 기술을 연마한 이경노 장인의 최근 작품 30여 점을 공개하며 한국 전통 미감이 현대적으로 어떻게 해석되고 이어질 수 있는지 탐색한다.

'간섭(干涉)'은 남의 일에 참견한다는 뜻으로, '간섭 프로젝트'는 '협업'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말한다. 도예 작품 등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전시를 열어온 박여숙 대표는 2018년 장인 이씨와 함께 은입사 작품을 선보이는 간섭을 열었으며, 이번 전시에서 7년 만에 두 번째 성과를 공개했다. 박 대표는 이씨의 완성도 높은 전통 공예 기술에 현대적인 감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았다.

전북 남원이 고향인 이씨는 1970년대 서울 고가구 공장에서 일하며 공예에 입문했으며, 서울시 무형유산 입사장 최교준의 문하에 들어가 입사기법을 비롯한 전통 금속 기술을 사사했다. 이후 1987년 국가 지정 문화재수리기능자가 됐다. 두 사람은 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 전시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에서 예술감독과 참가 장인으로 처음 만났다. 박 대표는 "1990년대부터 해외 전시를 나가며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경쟁력 있다는 믿음을 더욱 갖게 됐다"며 "백동 공예 기술도 세월 따라 잊히는 게 안타까웠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이어나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작업은 구리와 니켈을 섞은 백동을 두들겨 형태를 빚고(단조·鍛造), 한자 혹은 한글 문양을 선으로 새겨 넣는(조이·雕螭) 방식으로 이뤄진다. 단조 기법은 망치로 두드릴 때 힘을 정교하게 조정해야 하고, 형태를 완성할 때는 각 면을 만들기 위해 접어도 끊어지지 않을 정도의 깊이로 접이선을 조각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작업을 통해 이번 전시에는 희자문 팔각함, 나비문자 삼층합, 십장생 서류함, 와인 칠러 등을 제작했다. 이번엔 황동과 백동을 함께 쓴 작품도 처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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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 십장생 서류함, 14.7 x 35.3 x 23.6(h) cm. [사진 박여숙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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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 선각 나비문자문 삼층합( 白銅 線刻 蝴文字文 三層盒 ) 13 x 13 x 11.3(h) cm. [사진 박여숙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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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박 대표가 보는 우리 것의 멋은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은은하게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전통 작품의 비례와 문양을 최대한 참고하되 현대 생활에서 쓰일 수 있는 것들로 제작했다. 전시장 2층에는 백동 기물을 윤형근·정상화·전광영 등 현대 회화와 함께 배치했다.

이씨는 "저 혼자 제작하면 판매도 어렵고 요즘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며 "협업은 제가 전통 기술을 활용해 실용적인 물건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기회를 열어줬다"고 말했다.

이런 작품은 누가 찾을까. 전시장에선 30대 남성 관객이 작품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박 대표는 "우리 주변에 이런 분들이 있어 희망이 보인다"며 "백동 공예품과 현대 도자 등 아름다운 우리 작품을 모아 도록으로 내고, 프랑스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 같은 곳에서 전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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