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수온에 강원 원정양식까지… 멍게 최대산지 경남, 올핸 지각 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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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10시30분쯤 경남 통영시 산양읍 멍게 선별작업장에서 인부가 멍게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옮기며 작업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펭년(평년)보다 마이 늦긴 합니더. 이래라도 올해 첫 물량을 내놓으이 일단은 다행 아입니꺼.” 21일 오전 10시 30분쯤 경남 통영시 산양읍의 양식 멍게 선별 작업장. ‘바다의 꽃’ 멍게가 피워올리는 바다 내음이 코를 찌르는 가운데 선별된 멍게를 플라스틱 바구니에 분주히 옮겨담던 멍게 양식어민 송광탁(70)씨가 한 말이다. 녹색 바구니에 가득 담긴 멍게의 노란ㆍ빨간빛이 탐스럽게 선명했다.

‘97% 폐사’ 경남 멍게, 2개월 늦깎이 출하

경남 통영ㆍ거제 일대에서 기르는 남해안 멍게의 ‘늦깎이 출하’가 이날부터 시작됐다. 송씨의 작업장에선 6명의 인부가 양식봉의 멍게를 떼내고, 이를 세척해 한 알씩 분리ㆍ선별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바다 위 20평(66.1㎡) 남짓한 작업장과 맞닿은 육지를 연결하는 건 10m 길이 철제 다리. 세척ㆍ분리를 마쳐 상자에 담긴 멍게는 작업장에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육지로 오르고, 이곳에서 바로 물차가 멍게를 실어 나르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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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10시30분쯤 경남 통영시 산양읍 멍게 선별 작업장에서 인부들이 멍게 선별 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민주 기자

분리ㆍ세척 기능을 갖춘 선별기 앞에서 인부들 작업이 분주한 가운데, 작업장 한편에선 올해 처음 출하된 남해안 멍게를 한 아름 사 들고 기념 촬영을 하는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50대로 보이는 한 관광객은 “마침 인근을 방문했다 멍게 작업 소식을 반가운 마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통영에 있는 멍게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멍게수협)에 따르면 연간 국내 멍게 생산량 3만t 중 약 70%가 양식어가 250여곳이 일구는 경남 앞바다 800㏊ 양식장에서 난다. 본래 매년 2월 초나 3월 말 그해의 첫 경매인 ‘초매식’을 여는 것으로 멍게 출하 신호탄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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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멍게수협 조사에선 국내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경남 앞바다 일대 양식장 멍게 97%가 폐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지난해 기록적인 폭염 속 수온이 30도까지 솟구치며 경남 앞바다 양식 멍게 97%가 폐사한 탓이다. 사실상 ‘전량 폐사’였다. 물량이 없어 올핸 초매식도 열지 못했고, 첫 출하도 2개월여 늦춰진 이날에야 시작됐다.

“강원 앞바다 피신한 멍게, 1년 키워 내보내”

매년 이맘 때 남해안 멍게의 가격(껍질을 제거한 깐 멍게 기준)은 1㎏에 1만6000원 안팎이지만, 이런 사정 탓에 지금은 2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거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작업 현장을 지켜보던 송씨는 “서글프기도 하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과 같은 전량 폐사는 40년 넘게 멍게양식업을 한 송씨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본래 멍게는 2년을 길러 아이 주먹 정도 크기가 될 때 출하한다”며 “오늘부터 출하하는 멍게는 모두 1년산이다. 크기부터 예년만 못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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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경남 통영시 앞바다의 멍게 양식장에서 건져 올린 명게 약식봉. 양식어민은 조류가 약해지는 때 양식장에 나가 멍게의 상태를 확인한다. 사진 멍게수협

어렵사리 출하된 이들 멍게는 여간 ‘귀하신 몸’이 아니다. 경남 멍게양식 어가 중 일부는 고수온 피해를 피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무렵 일부 멍게 씨알을 강원도 앞바다로 피신 보냈다. 경남 앞바다는 수심이 깊어도 25m를 넘지 않지만, 강원 앞바다는 50m까지 가는 곳도 있어 고수온 피해가 훨씬 덜하다고 한다.

전량 폐사의 악몽을 딛고 송씨는 지난해 11~12월쯤 이처럼 피신 보냈던 멍게를 다시 경남 앞바다로 모셔와 심었다. 그는 “본래 물살이 부드러워지는 보름 주기로 양식장에 나가 양식장을 살핀다”며 “올해는 남해안 멍게가 제때 출하되지 않으면서 주변 상인ㆍ식당 등에서 ‘멍게가 잘 자라고 있느냐’ ‘5월엔 출하가 되겠느냐’고 성화였다. 그 덕에 양식장을 살피러 나가는 때가 훨씬 많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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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10시30분쯤 경남 통영시 산양읍 멍게 선별 작업장 중 한 곳을 제외한 다른 작업장엔 적막이 감돌았다. 김민주 기자

이날 송씨가 출하한 멍게는 약 5t 분량. 매년 2~6월 이루어지던 출하 시기가 5월로 늦춰졌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출하될지는 그로서도 알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주변 작업장엔 여전히 적막만 감돌았다. 송씨는 “올해 여름을 넘기고 2년을 채워 출하할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며 “하지만 주변에 출하를 부탁하는 이들이 많고, 무엇보다 올 여름 고수온 피해가 얼마나 극심할지도 걱정됐다”며 1년산 출하를 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깊은 바다 양식 이전, 규제 완화를”

멍게수협에 따르면 지난해 전량 폐사를 경험한 양식어민 상당수는 올해 초부터 송씨처럼 강원 앞바다로 피서 보내는 멍게 씨알량을 늘렸다. 경남 앞바다에 좀더 수심 깊은 곳으로 양식장을 옮기려는 어민도 많다.

하지만 양식장 이설은 수산업법에 따라 기초ㆍ광역지자체 심의를 모두 통과하고, 어업권 및 공유수면 점ㆍ사용 허가도 모두 새로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고 한다. 송씨는 “매년 고수온 피해가 심해져 양식어민에게 이설은 그야말로 생존 문제”라며 “다수 양식어민은 양식장 이설 관련 규제 완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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