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예쁘니 매너도 좋네” 라방한 택시기사 통비법 위반 아냐…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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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지인 3명과 호출 택시에 탄 이연재(34·가명)씨는 직장 승진, 정치 성향 등 사적인 대화를 한참 나눴다. 그러던 와중 택시기사 A씨(30대)가 마치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듯한 수상한 낌새를 알아챘다. 이씨가 택시서 내려 유튜브를 뒤져보니 A씨는 이씨 일행이 탄 시간을 포함해 10시간이 넘는 택시 운행 시간 내내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놓고 시청자와 소통하고 있었다. 이씨와 지인의 대화가 송출됨은 물론 이씨가 승차하기 전 “(호출하는) 말투가 띠껍다”며 이씨를 비방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른 승객을 대상으론 “예쁜 여자들이 매너도 좋다”와 같이 품평 발언을 하고, 통화 중인 승객 목소리를 송출한 라이브 영상도 있었다. 당시 구독자는 2500여 명, 라이브 영상 조회수는 500~600회 정도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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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운행 중에는 카메라를 전방으로 돌렸지만 택시에 타고 내리는 과정에서 일부 승객의 얼굴이 노출되기도 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피해 사실을 안 이씨는 곧바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통신비밀보호법, 모욕으로 A씨를 고소했다. A씨는 지난해 6월까지 약 1년간 택시 운행 시간 동안 유튜브 방송을 했다. 승객이 타면 카메라 각도를 본인 쪽으로 틀고 승객 간 대화나 통화를 라이브에 그대로 송출했다고 한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A씨를 지난 12일 검찰에 넘겼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택시 운전 중 휴대폰·고프로·블랙박스 등 영상 녹화 장치를 차량 운행 도구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활용한 혐의를 받는다. 다만 통신비밀보호 및 모욕죄는 혐의없음으로 불송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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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당시 A씨가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의 한 택시 라이브 영상. ″예쁩니다″라는 승객에 대한 외모 평가와 함께 손님이 탑승 중이라는 스티커가 화면에 붙어있다. 사진 독자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되려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은 해당 택시기사가 승객 일행의 대화에 참여해 타인 간의 대화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씨의 지인이 하차 직전 “설마 이거 방송 중이에요?”라고 물었고, 기사가 “네”라 답했으며, 이에 지인이 “방송하세요”라고 문답을 이어갔기에 4명 모두 대화 당사자로 본 것이다. 또한 승객의 통화는 전화한 상대편의 대화 내용은 라이브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역시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경찰 측 설명을 들은 피해자는 21일 “법리에 저촉되지 않음은 이해했다”면서도 “승낙이 없었음에도 4명의 대화가 통째로 방송된 게 죄가 아니라니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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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경찰서. 연합뉴스

대화에 끼면 통비법 적용 어려워…"보완 필요" 

이처럼 라이브 방송 등 영상 녹화와 녹음이 일상화되며 통신비밀보호법도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2014년 대법원은 2009년부터 3년 동안 승객 허락 없이 고민 상담 내용과 노래 등을 방송한 택시기사 임모(54)씨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타인 간 대화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했다”며 유죄를 선고한 원심과 달리 “임씨가 대화에 참여했으니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택시는 2010년 유명 가수 아이유(본명 이지은)가 우연히 타 ‘아이유 택시’로도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대가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새로운 문명의 기구가 계속 등장 중인 만큼 법도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변호사 자격이 있는 한 수사과 경찰은 “단순히 기사와의 대화가 아니라 몇십, 몇백명의 구독자가 보는 건데 피해자 입장에선 비밀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법의 빈틈으로 보기 충분하다”고 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디지털 개인정보 연구 10년차 변호사는 “개인정보가 중요해진 시기인 만큼 대화 주체를 보다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며 “단순히 대화에 끼어들었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대화를 나눴다고 보기엔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도 말했다. 노계성 법무법인 위 변호사는 “지금의 통신비밀보호법은 도청이 문제던 시절에 머물러있는 구식 입법”이라며 “벌금형이 없는 현행 처벌규정에 벌금형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다양한 상황에 더 유연하게 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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