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규제 샌드박스? 기업민원수석?…공약이 눈감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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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공약 검증 / 규제 개혁

규제 개혁은 역대 대통령 후보의 단골 메뉴다. 새 정부 초기 대통령들은 낡은 규제를 ‘전봇대’(이명박 정부), ‘손톱 밑 가시’(박근혜), ‘붉은 깃발’(문재인), ‘모래주머니’(윤석열) 등으로 표현하며 뿌리 뽑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대개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선 주요 후보가 규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대표 공약이 사뭇 다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규제는) 합리화의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규제를) 판갈이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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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이 후보 측은 행정 서비스 쇄신과 효율 제고, 이를 통한 편익 확대에 방점을 찍는다.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은 “행정 편의에서 오는 규제는 개선해야 하지만 더 엄격하게 해야 할 것도 있다. 예컨대 건강(보건) 관련 규제”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규제 완화에 보다 적극적이다. 기업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줘 투자를 늘리는 게 핵심이다. 김 후보에게 조언하는 김종석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는 “규제 혁신을 통해 기업 환경이 개선돼야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조만간 ‘규제 샌드박스 확대’를 골자로 하는 공약을 발표할 계획이다. 신상품·신서비스에 대해 일시적으로 규제를 풀어 기술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제도다. 수소 충전소, 코로나19 원격 진단 등에 도입됐으며, 지금까지 1500여 건 승인됐다. 이 후보 측의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샌드박스 적용 대상을 키워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시범 프로젝트를 만들고, 산업화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본의 미래 도시 우븐시티(71만㎡)를 연상하면 된다”고 말한다. 일본 정부는 자율주행·드론·에너지 관련 규제를 풀고, 기업은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식이다.

다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규제 샌드박스를 확대한다는데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며 “애초에 (민주당이) 규제 완화에 소극적인데, 성과를 낼지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김 후보는 ‘규제 사령탑’ 부서인 규제혁신처 신설, 대통령실 내 기업민원담당수석 도입 등을 약속했다. 김종석 석좌교수는 “규제혁신처를 만들 경우 법·제도에 위반되지 않으면 일단 허용한다는 기조(네거티브 시스템)에 맞춰 일관성 있게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상속세 최고 세율 인하(50→30%), 최대주주 할증(20%) 폐지도 공약했다. 법인세는 일자리 창출을 조건으로 최고세율을 24%에서 21%로 낮춘다. 김 후보 정책 참모인 정구현 제이캠퍼스 원장(전 경기개발연구원장)은 “주 52시간제, 정년 연장 등을 강제할 게 아니라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정 손실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100조원대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발생한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원한 교수(조직학 전공)는 “규제혁신처가 되레 규제를 양산하고, 사업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규제 기준 국가’를 제시했다. 정보기술은 미국, 금융은 영국, 연구·개발은 스위스 등 분야별 선진국 규제를 기준으로 삼자는 얘기다.

김우철 교수는 “지난 정부에서 일제히 규제 개혁을 외쳤지만 왜 대부분 실패했는지 살펴보는 게 먼저”라며 “정부 출범 초기에 과감하고 체계적으로 변화 방향을 잡고,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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