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건보 이사장 "수술 앞두고도 담배…중독시킨 담배회사 책임"
-
1회 연결
본문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담배소송 항소심 최종변론(12차)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건보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500억원대 규모 손해배상 소송에 출석해 “담배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건 너무나 뻔한 진실”이라고 호소했다.
“수술 앞두고도 병원에서 담배…담배회사, 중독 시켜놓고 궤변”
서울고법 민사6-1부(재판장 박해빈)는 22일 건보공단이 국내 담배회사 3사(KT&G·한국필립모리스·BAT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533억원 손해배상 소송 최종 변론을 열었다. 소송가 533억원은 30년 이상 20갑년(1년간 하루에 한 갑씩 피울 때의 소비량) 흡연 후 폐암·후두암을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게 공단이 10년간(2003~2012년) 지급한 진료비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담배소송 항소심 최종변론(12차)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정 이사장은 재판 시작 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흡기 내과 전문의로서 평생 담배를 피워 병이 나는 환자에게 담배 피우지 말라고 이야기하며 살아왔다”며 “담배 끊으라고 하면 환자들은 하나같이 웃으면서 ‘예 끊어야죠’라고 한다. 못 끊겠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그는 “수술을 앞두고도 병원 복도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장면들을 수도 없이 본다”며 담배회사들을 향해 “담배를 안 피웠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중독을 시켜 놓고 무슨 궤변인가”라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담배가 중독성이 있고, 폐암을 비롯해 중요한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판결을 구한다”며 “1심에서 원했던 폐암과 흡연의 연관성에 관한 자료도 가지고 왔다”고 했다.
1심 “개별 환자 흡연 외 요인 배제 어려워”

22일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담배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이번 사건은 공공기관이 제기한 국내 첫 ‘담배 소송’으로 2014년 소송 제기 때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20년 11월 1심에서는 공단이 패소했다. 1심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는 인정하면서도, 개별 환자들에 대한 적용은 어렵다고 봤다. 흡연 외에도 생활습관 및 가족력, 직업적 특성, 대기오염 등 다양한 요인이 폐암의 원인이 되는 점, 비흡연자 중에도 폐암 환자가 발생하는 점 등을 근거로 했다.
약 5년 전 시작된 항소심은 막바지를 앞두고 있다. 이날 정 이사장은 법정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PT)에 나서 약 20분간 발언했다. 그는 “1심 판결에서 개인이 흡연에 노출된 상황을 추가 증명해야 한다고 제시해서 두 가지를 입증한다”며 화면에 암 발생 위험도를 나타낸 그래픽을 띄웠다. PT에서 정 이사장은 ▶건강보험연구원의 전국 14만명 검진센터 수검자 추적 관찰 결과 ▶담배중독자 6명 심층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이날 6명 중 한 명인 최모(85)씨가 방청석에서 일어나 인사하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최씨는 공무원으로 평생 일해 직업력이 없고, 하루에 담배를 1~3.5갑 피웠다”며 “(가족력·과거력·음주력 등) 아무런 의학적 위험인자 없이 오직 담배에 의해 폐암으로 진행된 담배중독의 전형적 예”라고 했다.

정 이사장은 22일 '담배 소송' 최종 변론 PT에서 금붕어 사료 성분표 사진을 제시하며 ″제가 키우는 금붕어 사료 성분표인데, 사람이 먹는 게 아닌데도 이렇게 철저하게 관리한다. 담배는 어떻나″라고 말했다. 사진 건보공단
그는 금붕어 사료 성분표 사진을 띄우며 “제가 키우는 금붕어 사료 성분표인데, 사람이 먹는 게 아닌데도 이렇게 철저하게 관리한다. 그런데 담배는 어떻나”라며 “70여종 이상 발암물질을 숨기면서 타르·니코틴만 표시한다”고 질타했다.
정 이사장은 “질병청 자료에 따르면 연간 국민 6만명이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한다. 1년에 대형 여객기 120대가 추락하는 것”이라며 “중장기적 인구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가는 책임지고 미래세대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의학적 근거에 의해 판결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는 분명한 믿음을 주시길 바란다”며 말을 끝맺었다.
정 이사장은 40년 이상 호흡기 내과 전문의로 활동해왔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본부장과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 등을 역임했고, 2023년 7월부터 건보공단 이사장직을 맡았다. 정 이사장은 지난 1월 11차 변론에도 직접 법정에 나와 “담배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는 건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권을 부정하는 중대한 오류”라고 말했다.
앞서 국내에서 개인이 제기한 담배소송은 모두 원고 패소로 마무리됐다. 반면 미국·캐나다에선 주(州) 정부, 흡연 피해자 등이 원고 승소한 사례가 있다. 2009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폐암환자 유족들이 필립모리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7950만 달러의 징벌적 배상을 선고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