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저주’ 푼 매킬로이, 긴장도 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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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우승 후 목표를 잃은 매킬로이는 PGA 챔피언십을 47위로 마쳤다. [로이터=연합뉴스]

메이저 대회에서 번번이 무너지다 지난달 마스터스에서 우승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로리 매킬로이(36·북아일랜드)는 훨씬 더 강해질 것 같았다. 잰더 쇼플리는 PGA 챔피언십을 앞두고 “그랜드슬램 부담을 떨쳐낸 매킬로이가 무섭다”고 경계했다.

정작 PGA 챔피언십에서 매킬로이는 “이제는 즐기겠다. 내 경력의 하이라이트는 그랜드슬램 달성이며 나머지는 보너스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약간 놀란 기자 누군가가 다시 확인하자 “원했던 모든 걸 이뤘다. 골프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세계 최고 선수, 모든 메이저 대회 우승을 꿈꿨고 그걸 해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얼마나 경기를 더 하든 그건 보너스”라고 선을 그었다.

더 많은 우승을 추구하지만, 전과 같은 부담은 갖지 않으려는 일종의 작전일 수 있다. 실제 그는 “숫자나 통계 때문에 부담 갖고 싶지 않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골프를 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경기를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했다. PGA 챔피언십에서 매킬로이는 공동 47위를 했다. ‘로리 매킬로이 컨트리클럽’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그에게 유리하고 잘 쳤던 코스였다.

성적이야 그럴 수 있지만, 태도마저 좀 달랐다. 메이저 대회는 인내가 가장 중요한데, 평소보다 좀 더 짜증 내는 듯했다. 클럽을 던져버렸고, 낙뢰로 경기가 지연되자 카메라 앞에서 욕설도 했다. 대회 전 드라이버 테스트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게 드러났다. “오래 써서 페이스가 얇아졌다”는 사실을 그냥 말하면 될 텐데, 평소와 달리 나흘 내내 인터뷰를 거부해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샀다.

그러고 보니 PGA 챔피언십 직전 참가한 트루이스트 챔피언십에서도 매킬로이는 뭔가 뜨악해 보였다. 마스터스 이후 그와 관련한 뉴스가 몇 개 있었다. 호주 대회에 2년간 참가한다. 인도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간다는 보도자료도 22일 왔다. 초청료를 꽤 받을 거다. 다음 달에는 영국 런던으로 이사한다. 이사는 마스터스 우승과 상관없이 예정돼 있었고 매킬로이는 미국 플로리다의 집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메이저대회 4개 중 3개가 열리는 미국에서 약간 발을 빼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마스터스 우승 전까지 매킬로이는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 같았다. 다시 굴러 내려올 바위를 산 위까지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그 시시포스 말이다. 매킬로이는 마스터스 우승으로 통쾌하게 저주를 풀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더 멋진 신화를 쓸 거라고 말이다. 물론 매킬로이는 할 만큼 했다. 10대 때부터 최선을 다했다. 목표는 자신이 정하는 거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건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다.

타이거 우즈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 우즈는 섹스스캔들 이후에도, 칩샷 입스에 걸렸을 때도, 허리 수술을 하고 교통사고가 났어도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목표를 잃지 않았다. 매킬로이는 이제 족쇄가 풀렸는데 하이라이트는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마스터스 우승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매킬로이의 말이 자꾸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우리 내년에는 여기서 무슨 얘기를 할 건가”라고. 형벌을 끝낸 신화의 매력적인 주인공과는 할 얘기가 적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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