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주한미군 4500명 감축설…中견제 위해 진짜 감축? 한미 관세 협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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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린 '오산 에어파워데이 2025 미디어데이'에서 미 해병대 F-35B가 공개되고 있다. 뉴스1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군 주둔 규모를 현재의 2만 8500명에서 4500명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트럼프 2기 미 행정부의 해외 주둔군 효율화 기조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미 측이 대중 견제 강화를 위해 주한미군의 역할을 확장하거나 방위비를 인상하기 위한 협상 카드로 이를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즉각 “주한미군 철수는 논의된 적 없다”고 사실상 반박하는 입장을 내놨다.
대중 견제 위해 주한미군 대수술?…정부 ‘화들짝’
22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약 4500명의 주한미군 인원을 한반도에서 빼 괌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WSJ는 두 명의 미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 아이디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참고하기 위해 준비 중인 북한에 대처하기 위한(dealing with North Korea) 비공식 정책 검토의 일부분”이라고 전했다.
비공식 검토라는 표현은 아직 정책 반영을 위해 공식적으로 이를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검토 주체가 미 국방부란 점과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압박 기조 등을 고려하면, 북한의 위협에 대응 가능한 선에서 주한미군의 적정 감축 규모를 산출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여기엔 북한의 대남 위협 뿐 아니라 유사시 중국이 북한을 활용한 ‘한반도 양동 작전’에 나설 때 미측 전력 분산으로 인한 위협 평가 등도 포함됐을 수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15일 심포지엄에서 한국을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항공모함”으로 묘사하며 ‘한반도 항모론’을 띄운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 수 있다. ‘트럼프 맞춤형’으로 주한미군의 효용성을 부각한 셈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주한미군 규모 조정에는 부정적 입장을 밝혀 왔다.
국방부는 23일 입장을 내고 선을 그었다. 국방부는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해 한·미 간 논의된 사항은 전혀 없다”면서 “주한미군은 한·미 동맹의 핵심전력으로 우리 군과 함께 굳건한 연합 방위태세를 유지하여 북한의 침략과 도발을 억제함으로써 한반도 및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 왔다”고 밝혔다. 외교부 역시 같은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미 측의 공식 입장이 아닌 언론 보도에 대해 정부가 적극 해명에 나선 건 이례적이다. 감축이나 규모 조정이 아닌 ‘철수’란 강한 단어를 쓴 건 미 측 기류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와 관련,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상호방위조약에 의한 동맹 국가로 상호 신뢰와 존중의 기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서 “만약 주한미군 병력에 변화가 있다면 한국과 협의를 해야 할 사안”이라고 언급했다. ‘통보식 감축’은 양국 간 신뢰를 크게 저해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성 우려를 드러낸 셈이다.
외교부도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근간(backbone)”이라며 “미 국방수권법(NDAA)에도 주한미군의 현 수준 유지 내용이 지속적으로 포함돼 왔다”고 강조했다.
육군 줄이고 해·공군력 위주 개편 유력

올해 3월 12일 경기 파주시 무건리 훈련장에서 2025 FS/TIGER 일환으로 실시된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활용 ‘한미연합 WMD(대량살상무기) 제거훈련’에서 마동혁 25사단 해룡여단 중령과 윌리엄 테일러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스트라이커여단 중대장이 작전 토의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실제 주한미군 주둔 규모는 미 의회 의결 사항이다. 올해 NDAA는 “대한민국에 배치된 약 2만 8500명의 미군 병력의 주둔을 유지함으로써” 한·미 동맹을 강화할 것을 못 박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 상·하원은 공화당이 우세하고, 트럼프의 당 장악력도 강하다. 내년 회계연도 NDAA에서 주한미군 규모를 달리하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니란 얘기다.
감축이 이뤄진다면 주한미군 지상군 전력의 주축인 스트라이커 전투여단(SBCT·스트라이커여단)이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 육군의 기동부대인 전투여단(BCT)의 규모는 4000~4700명이다.
올해 2월 미 육군은 “제4보병사단 예하 제1스트라이커여단을 제2사단 예하 1스트라이커여단으로 대체해 순환 배치 한다”고 발표했는데, 다음 순환 배치 시점에 이들을 괌 등 다른 곳으로 돌리는 구체적 방식까지도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

김영옥 기자
다만 감축 기조가 정해진다 해도 이를 미국의 방어 공약 약화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일부 나온다. 결국 최종 목표인 대중 억제를 달성하기 위해 한반도의 재래식 전력은 줄이되 확장 억제는 강화하는 쪽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지상 방어는 육군 전력 위주의 한국이 전담하게 하고, 미 측은 비교 우위가 있는 해·공군, 육군 정보 관련 인력만 남기고 슬림화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감축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미 측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트럼프의 최대 관심사인 관세나 방위비 분담금(SMA) 증액을 위한 협상 카드일 수 있다는 뜻이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 한·미 간 협의 사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대중 압박 동참을 견인하는 수단으로 주한미군 감축안을 활용할 수도 있다.
김정은에 ‘잘못된 신호’ 우려

지난 2019년 6월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문제는 이런 논의 자체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미 정부의 주한미군 지위 변화 검토를 한·미 동맹이 느슨해졌다는 징후로 오판, 국지 도발 등 대범한 행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김정은이 대미 협상 테이블에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올려놓고 주고 받기용 카드로 쓰려할 우려도 있다. 김정은은 1기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8년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한·미 연합연습 중단을 받아냈다.
WSJ에 따르면 이번 감축안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 국방부 실무진 검토인데, 이는 1기 때와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한 실무 차원의 대비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은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화할 경우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안보 공백에 대해 미 측에 추가 확장억제 보장을 요구해야 하며, 더불어 스스로의 대북 억제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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