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선거 앞 지금 입장 낼 필요 있나"…신중론 커진 법관대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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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법관대표회의 임시회가 열린다. 사진은 2022년 4월 열린 법관대표회의 정기회. 연합뉴스
26일 오전 10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가 열린다. 지난 8일 투표에 부쳐져 9일 소집이 결정된 이번 임시회는 처음엔 ‘이재명 공직선거법 사건 속도전’을 지적하는 강경한 일부가 제안했다.
당시엔 파기환송심 재판도 속도를 내는 것처럼 보이던 때였고, 직전에 정치권에서 ‘대법원장 탄핵’까지 꺼낸 탓에 법원의 독립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이후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 재판 및 기존에 진행 중이던 위증교사 사건 항소심(서울고법), 대장동 배임 사건(중앙지법) 모두 대선 이후로 재판이 밀리면서, 안건 수렴 과정에서 문구가 ‘사법신뢰 제고’ 및 ‘재판독립’으로 톤다운됐다. ‘재판 속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지만, 파기환송 이후 정치권에서 사법부에 대한 공세를 브레이크 없이 계속 강화하는 데 대한 우려’가 모인 결과다. 공세의 강도는 물론,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변화를 너무 숙고 없이 밀어붙이려는 것 같아 위험해 보인다’는 지적도 다수다.
“선거 8일 전 굳이” “규정상 다룰 수 없는 주제” 등 우려 부상

23일 서울 마포구 공덕오거리 인근 인도에 대선 후보 벽보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다만 법관들 사이에서는 ‘이제는 굳이 법관대표회의가 의견을 낼 필요가 있냐’는 신중론이 더 커지고 있다. 발단이 됐던 이 후보의 사건 강행 논란이 재판 중단으로 사라진 데다 선거를 8일 앞둔 시점에 열리는 회의라서다. 한 고법판사는 “선거 한 달 전 판결을 선고한 것도 정치적이라고 보는 시각이라면, 선거 일주일 전 법관들이 모여 어떤 입장을 내든 정치적이라고 지적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도 “이재명 후보의 재판이 엄청 속도감 있게 진행될 땐 ‘논의가 필요한 쟁점이 있지 않나, 저게 맞나’란 우려의 시선에서 회의가 소집됐을 수 있지만, 재판이 멈춘 마당에 뭘 더 말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의 날짜를 선거 뒤로 미루기라도 했으면 좋겠다”(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의견도 있다.
‘법관대표회의가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의견을 포함해 건의를 할 수 있나’하는 물음표도 나온다. 전국법관대표회의규칙 제6조(임무) 1항은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 및 법관독립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거나 건의할 수 있다’고 정한다.
법관대표회의는 이번 임시회 안건 상정 뒤 대외적으로 배포한 보도자료에 ‘독립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한 안건’을 강조하며 사법신뢰‧재판독립이 부각된 내용만 담았다. 그러나 안건 제안 원문에 있는 ‘특정 사건의 이례적 절차 진행’ ‘이번 법원의 절차 진행으로 촉발된’ 등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선고를 연상시키는 표현을 제외한 채 편집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법관대표회의 측은 “단순 요약을 한 것일 뿐, 의도를 가지고 특정 문구를 제외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총 6쪽 분량의 의장 상정 안건 원문에는 ‘사법신뢰와 재판독립 일반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기로 한다’ ‘개별 재판과 절차 진행의 당부에 관한 의견표명은 하지 아니한다’는 원론적 문구가 있고, 이 부분은 2쪽 분량의 요약 보도자료에도 포함돼있다. 하지만 실질적 내용은 ‘법원의 재판과 절차 진행을 이유로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는 식으로 사실상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선고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전제로 둔 것처럼 서술돼 있다. 법원 내에선 “일단 처음 제안자의 주장이 있으니 안건에 포함해 썼겠으나 규정상 다룰 수 없는 내용이라 의결은 못 할 것”이란 지적이 있다. “재판사항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란 반응도 지배적이다.
"법관회의 투명성과 대표성 필요" 지적도
법관대표회의 운영의 절차적 투명성과 대표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단 지적도 나왔다. 소집 투표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 문제에서 번진 논의다. 채택되진 않았지만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올린 창원지방법원 수렴 안건 중엔 “안건 고지 및 의견수렴 절차를 명확히 하고 공개투표에 부쳐, 전체 법관의 의사가 왜곡되지 않도록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언론의 관심이 크고 법관대표회의 논의‧결의가 법관 전체의 의사로 해석될텐데, 다수 법관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고 결의하는 것은 대표회의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에서다.
법관대표회의는 대법원 규칙으로 2018년 4월부터 공식화한 전국 법관들의 의견수렴기구로, 법원별로 인원수에 비례해 대표자를 두고 총 126명으로 구성된다. 법관대표들의 의사를 모아 안건상정, 의결 등 결의를 하지만 해당 법관 대표가 소속 법원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이나 관여도는 법관대표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진행해 조금씩 달랐고, 구성원들의 적극적 의사 표시가 적은 경우 총의가 아닌 법관대표 개인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는 지적도 일부 있던 와중 창원지법의 수렴 의견은 이에 대한 대안 제시 차원이다. 법원 내에서도 절차적 명확성과 투명성에 대해선 동의 의사를 밝히는 법관들이 많다.
현장에서 새 안건 상정 가능…의결에 출석 과반 필요

9일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사법연수원 전경. 연합뉴스
회의 7일 전 확정해 상정된 안건에 대해선 각급 법원 법관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회의 당일 현장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현장에 모인 법관대표들이 즉석에서 제안해 9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현장안건을 상정할 수도 있다. 논의 과정에서 상정 안건의 문구, 내용은 병합, 수정 등 다양하게 조율될 수 있고, 최종적으로 ‘투표에 부치자’고 확정된 안건에 대해 투표를 거쳐 의결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현장에서 의결할 경우 출석 인원 과반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만 정기회의가 아니고 임시회의이고,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히 소집된 회의인 만큼 당일 의결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회의를 속행하거나, 의장이 ‘분과위원회에서 먼저 더 자세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분과위원회로 안건을 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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