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국민 지키고, 꿈도 키운다"…어느 경찰관의 이중생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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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경찰청 3기동대 소속 백종욱 경위가 2021년 하남소방서 백승구 소방장과 함께 대한민국 '경찰 vs 소방' 춤 대결 영상을 촬영했다. 백 경위는 전문 브레이킹 댄서로 대학에까지 진학했다가 경찰관이 된 뒤에도 춤을 추고 있다. 사진 백종욱 경위
영상 속 근무복을 입은 경찰관이 춤 연습실에서 날아다닌다. 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물구나무를 선 채 수십초 동안 다리로 허공에 풍차를 그렸다. 이어 현직 소방관이 등장해 대한민국 경찰 대 소방의 춤 대결이 펼쳐진다. 소방관의 헤드스핀(머리를 바닥에 대고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몸을 돌리는 것)에 경찰관은 에어 트랙(한 손으로 몸을 지탱한 채 몸을 회전시킨 뒤 무게 중심을 반대쪽으로 옮기는 동작)으로 응수한다. 두 사람이 일어서서 손을 잡는 장면으로 영상은 끝난다.
영상 속 주인공은 비보잉(B-boying)을 하며 무대 위를 누비다 경찰관이 된 백종욱(31) 경기남부경찰청 3기동대 경위다. 브레이킹 댄스를 처음 접한 건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던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중학생 때부터 학창 시절 내내 YMCA 청소년문화센터 연습실을 찾아 춤을 연습했다. 고등학교 땐 수원에서 활동하는 댄스 크루 ‘플라톤’의 일원이 됐다. 자연스럽게 대학 학과도 건국대 공연예술학과를 선택했다.
스무살 때부터 두각을 보여 비보잉 크루들의 모태로 불리는 ‘익스프레션’ 크루에서 활동했다. 63빌딩 공연장에서 열린 비보잉 뮤지컬 ‘마리오네트’에도 출연했다. 백 경위는 “가면극에 1인 5역으로 마법사, 조종당하는 인형, 피에로, 가면 인형1, 가면 인형2로 출연했다”며 “무대 위에서 가장 잘하는 걸 할 땐 ‘나한테 반하겠지’라는 생각에 자존감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백 경위는 대학 새내기 시절 온갖 공연과 댄스 배틀에 참가한 뒤 의경으로 입대했다. 군 복무 중에도 브레이킹 댄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를 관리하던 기동대 경찰관이 연습실 마련을 허락해준 덕분이었다. 그는 “의경 생활하던 1기동대 지하에 연습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주신 당시 부관님, 이제는 경찰 선배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경기남부경찰청 3기동대 소속 백종욱(왼쪽) 경위가 대학 재학 시절 비보이 뮤지컬 마리오네트에 출연해 브레이킹 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백종욱 경위

경기남부경찰청 3기동대 소속 백종욱 경위가 지난 2023년 2월 19일 서울 용산 올장르 댄스배틀에 참가해 브레이킹 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백종욱 경위
하지만 그는 가난한 예술가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심한 게 경찰 시험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전역한 지 딱 1년 만인 2016년 순경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이웃에게 따뜻한 경찰관, 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찰이 되고 싶다는 뜻을 품었다. 이듬해 8월 순경으로 임용된 뒤 안산단원경찰서 선부2파출소와 용인 5기동대 등에서 근무했다. 근무 시간엔 주민을 지키고, 퇴근한 뒤엔 댄스 크루에서 활동하면서 꿈을 잃지 않았다. 틈틈이 승진 공부도 해 올해 초 입직 8년 만에 경위로 승진했다.
박자에 몸을 맡기고 무대 위에서 빛나는 댄서 생활도 좋지만 치안 현장에서 주민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아 기쁘다는 게 백 경위의 소회다. 안타깝고 참담한 사건들을 목격하며 그는 브레이킹 댄스 영상으로 유튜브 수익을 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는 “지난 2023년 3월 선부동 다세대주택 화재로 나이지리아 어린이 4명이 숨진 출동 현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비보이 경찰관 유튜브 채널로 수익을 내 불의의 사고나 범죄로 피해를 본 분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직은 고민 단계”라고 했다.

경기남부경찰청 3기동대 소속 백종욱(왼쪽) 경위가 지난달 서울 종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방패와 경광봉을 들고 서 있다. 사진 손성배 기자
올해엔 무대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순찰차를 타고 근무하던 중 교통사고로 상처를 입기도 했고, 계엄 뒤 탄핵 정국 속에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백 경위는 “국민을 돕는 경찰로 공직에 있으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춤을 출 수 있어 기쁜 인생”이라며 “무대 위에서 사람들에게 전한 즐거움과 웃음을 경찰관으로 일할 때도 전하고 싶다는 게 제 소소한 바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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