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란이 손 묶었지만 칸에선 손 들어줬다
-
3회 연결
본문

제78회 칸 영화제에서 ‘잇 워즈 저스트 언 액시던트’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의 거장 반체제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65)의 ‘잇 워즈 저스트 언 액시던트’(It was just an accident)가 올해 칸 영화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이 영화는 24일(현지 시각) 프랑스 남부 도시 칸에서 열린 제78회 칸 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경쟁 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파나히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1995년 ‘하얀 풍선’)과 각본상(2018년 ‘3개의 얼굴들’)을 받은 바 있다. 황금종려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써클’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2000년), ‘택시’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2015년)을 받은 그는 이번 수상으로 앙리 조르주 클루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버트 앨트먼에 이어 3대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석권한 네 번째 감독이 됐다.

이란의 인권침해를 고발한 영화 ‘잇 워즈 저스트 언 액시던트’의 한 장면. [사진 칸 국제영화제]
이번 영화는 정치범으로 수감 생활을 했던 한 남자가 과거 감옥에서 자신을 고문했던 경찰과 닮은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면서 일어난 일을 그린다. 남자는 그를 납치한 뒤 동료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그를 죽일 것인지 아니면 용서할 것인지 논의하고, 그 과정에서 과거 고문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상처가 드러난다.
파나히 감독은 수상 연설에서 “국내외 모든 이란인은 모든 문제와 차이를 제쳐두고 힘을 합치자”며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리나라의 자유”라고 밝혔다. 이어 “아무도 우리가 뭘 입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쥘리에트 비노슈 심사위원장은 “영화와 예술은 어둠을 용서와 희망, 그리고 새로운 삶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며 “그것이 파나히 감독의 새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한 이유”라고 밝혔다.
파나히 감독은 거장으로 손꼽히는 최고의 영화 감독 중 한 명이지만, 모국 이란에선 반정부 시위, 반체제 선전 등을 이유로 두 번 투옥되는 등 탄압을 받아왔다. 영화를 통해 폭압적인 정치 체제 등 이란 사회의 환부를 고발해왔기 때문이다. ‘써클’과 ‘오프사이드 걸’(2006년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등 그의 작품은 이란 정치 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이란 내에서 상영이 금지됐다.
2009년 반정부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그는 이듬해 20년 간 출국은 물론 영화 제작, 집필, 언론 인터뷰 금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가택 연금 상태에서도 온라인 화상으로 소통하고, USB를 밀반입하는 방식으로 몰래 영화를 만들어 해외 영화제에 출품해 왔다.
2022년 7월 앞서 선고된 6년 형을 다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수감된 그는 옥중 단식 투쟁을 벌인 끝에 이듬해 2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잇 워즈 저스트 언 액시던트’는 그가 석방된 뒤 만든 첫 번째 영화다.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비밀리에 촬영했으며, 배우와 제작진이 당국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파나히 감독은 전했다.
그는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 로이터 등과의 인터뷰에서 “귀국이 전혀 두렵지 않다. 수상하든 못하든 다시 돌아갔을 것”이라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어 “이 상은 지금 활동하지 못하는 모든 이란 영화 제작자들을 위한 상”이라고 덧붙였다.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은 두 자매가 관계가 소원한 아버지와 겪는 일을 그린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센티멘털 밸류’가 받았다. 3등상인 심사위원상은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시라트’(올리비에 라시 감독)와 여러 세대에 걸친 인간 드라마를 그린 ‘사운드 오브 폴링’(마샤 실린슈키 감독)이 공동 수상했다.
1970년대 브라질의 부패한 정계에서 벗어나려는 학자의 이야기를 그린 ‘시크릿 에이전트’는 감독상(클레베르 멘돈사 필류)과 남우주연상(와그너 모라)을 받았다. 여우주연상은 알제리계 프랑스 가정의 소녀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의 ‘더 리틀 시스터’에서 열연한 23세 프랑스 신인 배우 나디아 멜리티에게 돌아갔다.
황금종려상을 두 번 수상한 거장 다르덴 형제(장 피에르 다르덴·뤼크 다르덴) 감독은 ‘더 영 마더스 홈’으로 각본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허가영
한국 장편 영화는 3년 째 경쟁 부문에 진출하지 못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를 졸업한 허가영 감독의 단편 영화 ‘첫여름’은 한국 영화 최초로 ‘라 시네프’ 부문 1등상을 받았다. 라 시네프는 전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이 만든 단편·중편 영화를 대상으로 심사하는 경쟁 부문 중 하나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