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주차갈등, 층간소음, 중고거래…영화, 일상 불안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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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차금지'는 여성 직장인 연희(류현경)가 이웃과의 주차 갈등으로 인해 위협에 빠지는 상황을 그렸다. 사진 영화사 주단
밤 늦게 퇴근하는 여성 직장인 연희(류현경)는 자신의 주차 공간을 가로막고 있는 차 때문에 늘 골머리를 앓는다. 차에 남겨진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이웃집 중년 여성이 나타나 "늦은 밤인데 다른 주차 공간을 찾으면 되지 않나"라며 짜증을 낸다. 적반하장 태도에 연희는 쌓였던 화가 폭발한다.
'주차금지' 주차갈등 소재 스릴러 #'노이즈' 등 층간소음 영화 쏟아져 #생활밀착 스릴러, 불안사회 산물
21일 개봉한 영화 '주차금지'의 도입부다. 우리 주변의 흔한 주차 갈등으로 문을 연 영화는 연희가 이로 인해 낯선 남성(김뢰하)과 조우하게 되고, 그에게 살해 협박을 받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별 것 아닌 게 별 것이 되는 날이 온다고 했잖아"라는 남성의 대사는 일상의 작은 균열이 갈등과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공포를 일깨운다.
제작사 대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 손현우 감독은 "주차 문제 만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가는 오늘의 사회를 비추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차 갈등이 살인으로까지 번지는 현실에서 '주차금지'는 누구나 갖고 있는 일상 속 불안의 본질을 끄집어내 극대화한다.
일상 속 갈등과 위기를 소재로 한 영화가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른바 '생활 밀착' 스릴러다. 주차 갈등 뿐 아니라 층간 소음, 중고 거래, 휴대전화 분실, 스토킹 등 일상의 다양한 불안 요소가 영화의 소재가 되는 추세다. 최근엔 층간 소음 소재의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월 말 개봉한 '백수아파트'를 비롯해 '원정빌라'(2024), '사잇소리'(2022), '괴기맨숀'(2021) 등이 흥행에 실패했음에도 층간 소음 영화의 계보가 이어지는 건, 층간 소음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영화 속 갈등은 작금의 현실 그 자체다.

영화 '노이즈'의 주인공 주영(이선빈)은 층간 소음으로 고통받던 중 갑자기 사라진 동생 주희(한수아)를 찾아 나선다. 사진 바이포엠스튜디오
6월 개봉 예정인 '노이즈'는 아파트 입주 후 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자매의 이야기다. 층간 소음으로 고통받던 중 동생 주희(한수아)가 실종되자 언니 주영(이선빈)이 동생을 찾아 나선다. "저 아랫집 사는 사람인데요. 밤에는 좀 조용히 해주시면 어떨까 싶어서요"라는 현실감 넘치는 대사가 섬뜩함을 자아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84제곱미터'(7월 공개)는 '영끌'로 아파트 장만에 성공했지만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30대 직장인 우성(강하늘)이 층간 소음으로 이웃들과 갈등을 겪는 이야기다. 염혜란이 입주민 대표 은화를, 서현우가 우성과 함께 층간 소음 근원지를 찾아 나서는 윗집 남자 진호를 연기한다.
하정우가 연출 겸 주연을 맡은 '윗집 사람들'(하반기 개봉)은 층간 소음 갈등을 겪는 두 부부가 우연히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는 소동극이다.
생활밀착 스릴러의 흥행력은 이미 검증된 바 있다. 훔쳐보기가 취미인 공인중개사 정태(변요한)가 관찰 대상인 인플루언서 소라(신혜선)의 죽음에 휘말리는 내용의 '그녀가 죽었다'(2024)는 123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관음증'과 '관종'이라는 SNS 시대의 병리 현상을 제대로 그려냈다는 평가와 함께다.

영화 '타겟'은 중고 거래로 범죄의 표적이 된 수현(신혜선)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를 담은 스릴러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훔쳐보기가 취미인 공인중개사 정태(변요한)가 관찰 대상인 인플루언서 소라(신혜선)의 죽음을 목격하고 살인자의 누명을 벗기 위해 소라의 주변을 뒤지며 펼쳐지는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다. 사진 콘텐츠지오
신혜선 주연의 또 다른 영화 '타겟'(2023)은 온라인 중고 거래를 통해 범죄의 표적이 된 여성의 이야기로 42만 관객을 모았다. 고(故) 박희곤 감독이 중고 거래 범죄 뉴스를 본 뒤 만들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2023, 이하 '스마트폰을…')는 잃어버린 스마트폰이 해커 손에 들어가며 주인공의 일상이 위협받는 디지털 시대의 공포를 그려냈다. '숨바꼭질'(2013, 560만 관객)처럼 주거 침입을 소재로 한 '도어락'(2018)은 혼자 사는 여성들의 공포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156만 관객을 모았다.

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평범한 회사원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분실한 뒤 일상 전체를 위협받는 공포 상황을 그린다. 사진 넷플릭스

혼자 사는 여성의 공포를 그린 영화 '도어락'의 한 장면.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4분44초'(지난해 11월 개봉)는 44분 분량의 스낵 무비지만 택배, 층간 소음, 중고 거래는 물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캣맘(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는 사람) 등 일상이 공포로 변하는 순간을 각 에피소드에 담아 4만6000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생활 밀착 스릴러의 강점은 공감과 몰입이다. 주변의 일상적 소재로 현대인의 근원적 불안 심리를 자극해 몰입도를 높인다. 평범한 주인공이 '남 일 같지 않은' 고난을 겪기 때문에 관객이 감정 이입하기도 쉽다.
'스마트폰을…'에 이어 '84제곱미터'를 연출한 김태준 감독은 "이런 장르의 유행은 다양한 갈등과 불안감, 고립감 등 녹록지 않은 사회 현실과 관계가 있다"며 "영화 속 이야기에 대해 관객은 단순 공감을 넘어 내게도 언제든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층간 소음이나 주차로 인한 갈등에선 잘 모르는 이웃이나 타인을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스트레스를 넘어 공포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누구나 공감하는 사회 문제가 됐기 때문에 스릴러 영화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여성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도어락' 같은 소재의 스릴러가 앞으로 많이 나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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