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와대 다시 닫히나…“1000년 문화유산 본격 조사도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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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0일 청와대 개방 이후 지난 6월 3일까지 3년 여간 청와대 누적 관람객은 783만여명에 이른다. 사진은 지난 5월 당시 본관 모습. 중앙포토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지난 3년여간 계속돼 온 ‘청와대 개방’이 기로에 섰다. 운영·관리를 맡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청와대재단 측은 당분간 예약 관람을 이어간다는 방침이지만 중단은 시간 문제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빨리 청와대를 수리해서 그 (수리) 기간만 (용산에) 있다가 청와대로 갈 것”이라고 되풀이한만큼 이르면 3~4개월 내 청와대 복귀가 예상된다. 앞서 지난 3일 지상파 방송3사 출구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8.2%가 21대 대통령 집무실로 청와대를 택했다.
고려시대 남경 터, 경복궁 후원의 역사성 #'졸속 개방'으로 문화재조사 제대로 안돼 #"대통령실 복귀해도 '개방 정신' 이어가야"
고고역사학·건축학 등 관련 학계에선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단 걸 인정하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들은 청와대가 고려시대 삼경(三京) 중 하나였던 남경(南京) 터이자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으로 조성된 역사적 공간이란 데 주목하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개방 자체에 급급한 나머지 이 같은 가치가 제대로 연구·조명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2023년 5월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에 특별음악회를 위한 특설 무대가 설치된 모습. 연합뉴스
실제로 2023년 1월 (사)한국건축역사학회 등이 발표한 ‘경복궁 후원 기초조사 연구’ 결과, 청와대 일대에서 고려~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도기·옹기 조각 등의 유물과 유물산포지 8곳이 확인됐다. 당시 청와대 개방 관련 업무를 맡았던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궁능유적본부가 용역 발주한 이 조사는 본격 시굴 필요성을 제기한 지표조사 성격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운영·관리가 2023년 3월 문체부로 넘어가면서 문화재 발굴보다 공연·전시 등 활용 쪽에 무게가 주어졌다.

차준홍 기자
2023년 기초조사 때 참여했던 류성룡 고려대 교수(건축학)는 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경복궁과 후원(청와대)을 엮어 봄으로써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동선을 밝혀낸다든가 하는 후속연구도 가능한데 전혀 진척되지 못했다”며 “유산으로서 가치 탐색은 시작도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운 전주대 명예교수(전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는 “고려시대 남경의 이궁(離宮, 별궁)이 있던 역사 같은 게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채 졸속 개방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집무했던 공간으로만 여길 곳이 아닌,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상징적인 국가유산인데 지금은 유원지가 돼버린 느낌”이라면서 “지금이라도 어딜 보존하고 공개할지 전문가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주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도 “2022년에 청와대 노거수 6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 외에 추가 조사를 통해 사적 지정 등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서 “개방 여부와 별개로 이런 유산이 훼손 안 되게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경내엔 2018년 보물로 지정된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9세기),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인 ‘침류각’(1900년대 초) 등이 있다.

지난 202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청와대 노거수군의 분포도. 사진 국가유산청
문재인 정부 때부터 청와대를 경유하는 북악산 등산로가 열린 점 등을 감안해 향후에도 개방 정신이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문화유산위원회 근대문화유산분과 위원)는 “이미 개방한 역사가 있는데 대통령이 예전처럼 쓴다는 건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서 “일부 시설에 근대적 통치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전시하는 등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승재 원광대 명예교수(궁능문화유산분과 위원장)는 “예전처럼 담장으로 막을 게 아니라 경복궁 후원으로서 공간을 연결해 ‘열린 청와대’를 지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장기적으로 대통령실이 세종으로 옮겨간다면 청와대의 쓰임새가 다시 화두가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행정수도 세종 완성’을 공약집에 넣으면서 세종 집무실 완전 이전을 약속한 바 있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건축학)는 “만약 대통령실이 세종시로 가게 되면 청와대는 다시 시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장기적 계획까지 고려해 집무실을 둘러싼 제3의 해법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 2022년 7월 19일 서울 청와대에서 열린 '청와대, 한여름 밤의 산책' 언론 공개 행사 참가자들이 관저에서 펼쳐지는 퓨전 국악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청와대 야간 개방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중앙포토
한편 청와대재단 측은 “별도 지침이 없기 때문에” 예전과 같이 4주 후까지 관람 예약을 받고 있고 예정된 주말 상설 공연도 진행 중이라고 4일 밝혔다. 재단에 따르면 3일에만 2만620명이 찾는 등 2022년 5월10일 첫 개방 이래 누적 관람객이 783만여명에 이른다. 청와대는 총 25만㎡(7만 6000여평)의 부지를 아우르며 관람객은 이 가운데 야외정원인 녹지원과 본관·영빈관·상춘재·관저·춘추관 등을 둘러보게 된다. 예전에 비서실이 쓰던 여민관 3개동 가운데선 1관 1층만 공개되고 있어 일각에선 대통령실이 비공개된 여민관을 서둘러 수리하고 입주할 가능성도 내다본다.
청와대재단 관계자는 “현재는 관람 편의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어 각 건물에 수리·복구가 어느 정도 필요할지는 사용할 측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일단은 지침이 올 때까진 하던 대로 공개 관람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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