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희대 "국가 백년대계, 공론장 마련을" 대법관 증원법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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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조희대 대법원장이 전날 국회 법사소위를 통과한 ‘대법관 증원법’에 대해 5일 “국가 백년대계가 걸린 문제”라며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법원행정처는 전날 국회에 “단기간 대법관 과반수 증원은 사법중립을 위협할 수 있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희대 “헌법 예정한 대법원 본래 기능 뭔지 공론장 마련 희망”
조 대법원장은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헌법과 법률이 예정하고 있는 대법원의 본래 기능이 뭔지, 국민을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개편 방향이 뭔지, 이런 걸 계속 국회에 설명하고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재명 정부 내에 신규 증원 대법관이 모두 선발될 수 있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앞으로 법원행정처를 통해서 계속 국회와 협의할 생각”이라고만 답했다.
‘대법관 증원만으로 재판지연 문제와 구성 다양화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나’라는 질문에는 “여러가지 얽혀있는 문제고,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려있는 문제”라며 “오랫동안 논의해온 문제이기 때문에 행정처를 통해서 설명을 드리고 계속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행정처 “우리나라 사법제도 근간 바꾸는 일…신중 검토 필요”

대법관 증원을 골자로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 소위에서 통과된 직후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지난 4일 국회 법사위 회의실 앞에서 기자들에게 경과 보고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날 법안심사1소위를 열어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1년에 대법관 4명씩 총 16명을 늘린다는 구상이다.
이날 조 대법원장의 발언은 대법관 증원 논의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대법원 내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발의 법안은 ‘대법원의 업무 과중’을 제안이유로 들고 있는데, 법원에서는 대법관 증원만을 해법으로 정해두기보다는 증원이 재판 지연 및 사건 적체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먼저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컨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87년 개헌 이후 모든 법관이 참여하는 ‘원 벤치(en banc)’ 룰에 따라 운영돼 왔는데, 만일 대법관이 30명으로 늘어나면 원 벤치 운영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 경우 법령 해석 통일 기능이 약화돼 상고가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지난 4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연합뉴스
배형원 법원행정처 차장은 전날 법안소위에서 5분간 발언기회를 신청해 “단기간에 대법관의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를 새로 임명할 경우 필연적으로 당시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논란은 그 이후 임명 시기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배 차장은 “헌법상 우리나라 최고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의 수를 대폭 증원하는 것은 우리 사법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며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그런 과정 없이 단기간에 법안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배 차장은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 상고사건 적체 문제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며 “근본적인 원인은 대법원이 너무 많은 사건을 다루는 구조에 있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상고심사제 도입 등 구조적 개편이 병행돼야 하고 하급심의 권한 강화와 충실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관 수가 대폭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3~4인으로 구성된 소부 위주로 상고심 재판이 운영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소수의 대법관이 결론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대법원이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해 균형잡힌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어렵게 된다”고도 했다.
행정처는 조만간 이같은 의견을 담아 국회에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의견서에는 해외 사례와 기존에 진행됐던 상고심 개편 논의 등이 함께 담길 전망이다. 대법관 증원 시 대안으로 거론되는 독일 연방최고법원의 경우 법관들 사이에 차등이 있어 전원합의체 참여 법관은 한정돼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모델로 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은 상고허가제를 두고 1년에 약 60~80건의 사건만을 심리한다.
이날 아침 조 대법원장의 발언은 행정처와 논의하거나 사전에 준하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다고 한다. 행정처 관계자는 “출근길 촬영 요청이 들어온 언론사에 질문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안내한 뒤 양해를 구했는데, 돌발적으로 질문이 나왔고 거기에 대해 대법원장이 즉흥적으로 답변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여당은 전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하고 본회의에 법안을 회부할 계획이었으나 보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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