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아카데미상→에미상→토니상 싹쓸이…K컬처 또 역사적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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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소규모 극장에서 출발한 한국 뮤지컬이 최고 권위 토니상을 싹쓸이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부문 작품상을 포함해 6관왕을 기록하며 완벽한 ‘해피엔딩’을 그렸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에 이어 한국 뮤지컬이 K 컬처 역사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프로듀서 제프리 리차드가 작품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천휴 작가와 여주인공 헬렌 J. 셴이 포옹하는 모습도 보인다. 로이터=연합
‘어쩌면 해피엔딩’은 8일(현지시간) 올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연출상·남우주연상·각본상·작사작곡상·무대 디자인상 등을 수상했다. 경쟁작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죽어야 사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총 12개 후보 부문 중 10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 중 6개 부분에서 트로피를 거머쥐며 올해 토니상 최다 수상작이 됐다. 각본상 및 작사작곡상을 받은 박천휴(42) 작가는 한국 국적 최초 토니상 수상자의 주인공이 됐다.

'윌휴 콤비'라고 불리는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이 공동 제작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8일(현지시간)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6개 부분을 석권했다. 둘이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
지난 2016년 300석 규모 소극장에서 초연한 한국 창작 뮤지컬이 개막 9년 만에 뮤지컬 본고장 브로드웨이를 점령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시상식 직후 “버려진 로봇 두 명이 여행을 떠나 관계를 맺는 감동적인 뮤지컬이 힘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비평가와 팬 모두를 사로잡은 쇼의 놀라운 여정을 마무리했다”라고 보도했다. 미국 현지에서 토니상 시상식을 생중계한 유튜버 매튜 하디는 작품상 결정 직후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을 휩쓸었다(swept)”라고 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이번 토니상 수상으로 한국은 미국 엔터테인먼트계에서 가장 중요한 4대 상인 에미상(2022년 ‘오징어 게임’) , 그래미상(1993년 소프라노 조수미), 오스카상(2020년 ‘기생충’), 토니상을 모두 수상했다”며 ‘에고트’(EGOT·4개 상 앞글자를 딴 단어) 지위를 얻었다”고 평했다.

김영옥 기자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는 반응도 나온다. 앞서 토니상에 버금가는 권위 있는 상을 연달아 석권하면서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지난 2일(현지시간) 열린 제69회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에서 뮤지컬 부문 작품상·연출상·음악상·작사상·극본상·무대디자인상 등 6관왕에 올랐다. 앞서 드라마 리그 어워즈(작품상·연출상), 외부 비평가 협회상(작품상·극본상·연출상·음악상) 도 수상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8일(현지시간)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 6개 부문 상을 거머쥐었다. 헬렌 J.셴과 데런 크리스가 시상식에서 공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어쩌면 해피엔딩’은 박 작가와 미국인 작곡가 윌 애런슨(44)이 공동 창작한 작품이다. 21세기 후반 서울을 배경으로 사람을 돕는 로봇인 헬퍼봇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 2016년 서울 대학로의 300석 규모 소극장에서 초연됐다. 지난해 11월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규모를 키워 1000석 규모의 맨해튼 밸라스코 극장에서 관객을 맞이했다. 브로드웨이 개막 후 초기 부침을 딛고 공연 전체 기간 좌석 점유율 93% 수준을 유지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에 힘입어 내년 1월 17일까지 브로드웨이에서 연장 공연할 예정이다.
박 작가는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내가 꿈꿔왔던 것보다 훨씬 큰일”이라며 “우리를 이렇게까지 완전히 받아들여 준 (브로드웨이) 극장 커뮤니티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또 작사작곡상 수상 소감에서는 “한국의 인디팝과 미국 재즈, 현대 클래식 음악, 전통적인 브로드웨이를 융합하려고 노력했다”라며 “모든 감성이 어우러진 ‘멜팅팟’(용광로)과도 같다”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아울러 박 작가는 이 작품 브로드웨이 공연 투자사인 NHN링크를 통해 “진심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었고 이외의 수상 비결은 없는 것 같다”라며 “한국 팬이 없었다면 뉴욕에서 이렇게 긴 공연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국내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제 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6개 부문 시상하며 최대 수상작이 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배우들이 시상식에서 기념 공연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은 제프리 리처드는 이날 작품상 수상 소감을 통해 “지난 가을부터 벨라스코 극장에서 관객을 열광시킨 이 마법적이고, 멜로디컬하고, 아름답고, 진심 어린, 인간적인 뮤지컬로 이 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공 요인으로 보편성을 꼽았다. 지혜원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서울이 배경이지만 한국 역사나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소박하게 표현하며 관객들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인 것 같다”라고 꼽았다.
토니상 수상 경험이 있는 미국 콩코드 씨어트리컬의 션 패트릭 플라하반 최고 책임자(CEO)도 지난 2일 ‘K-뮤지컬국제마켓’ 콘퍼런스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공연이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라며 “공상과학의 설정이지만 구체적인 스토리에 관객 모두에게 잘 다가가는 주제가 담겨 있다라고 느꼈다”라고 전했다.

78회 토니상을 휩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두 주인공 헬렌 J.셴과 대런 크리스가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
이날 수상 소식에 문화계는 반색했다. 과거 ‘난타’를 해외에 진출시킨 경험이 있는 송승환 PMC프로덕션 예술총감독은 “‘어쩌면 해피엔딩’이 한국 공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만큼 한국 공연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9일 ‘오징어게임3’ 제작 발표회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한국의 창작 뮤지컬이 엄청난 평가를 받고 성장했다는 걸 뉴스를 보고 처음 알았다”라며 “기쁘고 놀랐고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한국뮤지컬협회도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토니상 수상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은 한국 소극장 뮤지컬이 미국 브로드웨이 대극장으로 확장돼 성공한 첫 사례이자 작품상 외에 한국인 최초로 극본상과 음악상을 수상한 기록”이라며 “초기 창작부터 상업화, 해외 진출까지 뮤지컬 생태계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델을 구현했다”고 의미를 전했다.
국내 팬들은 오는 10월 30일부터 내년 1월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제78회 토니상 주요 부문 수상작
▶뮤지컬 부문
작품상 - ‘어쩌면 해피엔딩’
연출상 - ‘어쩌면 해피엔딩’ 마이클 아든
각본상 - ‘어쩌면 해피엔딩’ 윌 애런슨, 박천휴
남우주연상 - ‘어쩌면 해피엔딩’ 대런 크리스
여우주연상 - ‘선셋 대로’니콜 셰르징거
작사작곡상 - ‘어쩌면 해피엔딩’ 윌 애런슨, 박천휴
무대디자인상 - ‘어쩌면 해피엔딩’ 데인 래프리, 조지 리브
리바이벌상 - ‘선셋 대로’
▶연극 부문
작품상 - ‘퍼포스’
남우주연상 - ‘오, 메리!’ 콜 에스콜라
여우주연상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사라 스누크
리바이벌상 - ‘유레카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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