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르포]해병대 투입에 성난 시위대…"무섭지만 옳은 것을 지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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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제발 쏘지 마세요! 제발 그만 하세요!

9일(현지시간) 엄마·아빠, 남동생과 함께 시위에 참여한 14살 크리스티나(가명)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터진 최루탄 소리에 더이상 대화를 이어 가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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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연방 건물 앞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방위대와 경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다. 로스앤젤레스=강태화 특파원

기자와 함께 서 있던 곳에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섬광탄과 최루탄에 이어 경찰 진압대가 고무탄을 쏘며 한꺼번에 밀려들자 크리스티나의 가족들도 급히 시위대와 함께 섞여 몸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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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연방 건물 앞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반대하며 크리스티나(14)의 가족들이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크리스티나는 본지 인터뷰 도중 터진 최루탄 소리에 울음을 터뜨렸다. 로스앤젤레스=강태화 특파원

트럼프 행정부의 대대적 불법 이주자 체포 작전에 항의하며 시작된 로스앤젤레스(LA) 시위 나흘째인 이날 오전까지 시위의 중심지 연방 건물(Federal building) 주변엔 시위대 규모가 크게 줄어들며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쓴 사람을 모두 체포하라”고 지시한 것도 원인이 됐다.

그러나 오후 들면서 시위대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지사에게 있던 주방위군 지휘권을 국방장관에게 넘긴 데 이어, 이날 해병대 700명 투입을 결정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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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연방 건물 앞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경찰 병력을 시위대를 향해 고무탄을 발사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강태화 특파원

해병대 투입 소식을 듣고 급하게 시위장을 찾았다는 오스카 토레스는 “사실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성실하게 일해왔던 친구와 가족들이 체포돼 구금돼 있다”며 “그들을 위해, 또 옳은 것을 위해 두려움을 참고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배트맨 복장 차림으로 자신을 ‘배트맨’이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트럼프는 권력을 남용해 헌법에 명시된 미국인의 권리와 미국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며 “2025년 미국에서 벌어지는 지금의 사태가 과거 나치가 했던 일과 뭐가 다르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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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연방 건물 앞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방위대와 경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다. 로스앤젤레스=강태화 특파원

이날 LA 경찰과 주방위대는 연방 건물을 봉쇄했지만, 시위대를 향해 별다른 반응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시위대가 건물 앞 도로를 완전히 점거한 오후 5시께 건물 양옆 100m 옆에 무장한 병력을 태운 군용 차량을 진입시켜 시위대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자진 해산”을 요구하는 방송이 나왔지만 시위대의 함성에 묻혀버렸다.

잠시 후인 5시 30분. 상공엔 여러 대의 경찰 헬기들이 저공비행을 시작했고, 군병력이 발사한 최루탄을 신호탄으로 경찰과 주방위대가 고무탄을 한꺼번에 발사하며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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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 9일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진압봉과 진압 장비를 착용한 채 시위대를 퇴거시키려고 시도하자 일부 시위대들이 손을 들고 '비저항 비폭력' 의사를 밝히며 경찰에 맞서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부 시위대는 물병 등을 던지며 저항했지만, 시위대 내에선 누군가에 의해 시작된 “평화로운 시위(peaceful protest)”라는 구호가 퍼졌다. 그리고는 다수의 시위대들이 진압대의 총구 앞에 무릎을 꿇고 두손을 들어 비저항 시위를 펼치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군중 속에선 “폭력을 사용하면 트럼프의 의도에 말려들게 된다”고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이 바람에 진압 작전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건물 고층에서 망원경을 보며 상황을 지휘하던 군복 차림의 남성들의 신호와 함께 군인과 경찰 병력은 재차 전진하며 10분여분 만에 시위대는 연방 건물 100m 밖으로 밀려났다. 본진이 완전히 건물 앞에서 해산하기까지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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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연방 건물 앞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시위대가 '비저항' 제스처를 밝히며 당국의 진압에 맞서자, 건물 고층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지휘부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스앤젤레스=강태화 특파원

일부는 인근 일본인 거주지 ‘리틀도쿄’에서 시위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이 체포됐고, CNN 취재진도 일시 체포됐다가 석방되기도 했다. 현지 언론들은 “24시간 이내에 해병대가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해병대 병력 투입 이후 시위의 전개 상황이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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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연방 건물 앞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방위대와 경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다. 로스앤젤레스=강태화 특파원

시위대는 정예 병력 투입에 강하게 반발했다. 카디나 마르티네스는 “과거 아프리카계를 시작으로 이번엔 히스패닉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일이고, 앞으로 일본과 한국계에게도 나타날 일”이라며 “트럼프의 의도에 말려 폭력 사태로 확대돼서도,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시위를 중단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제니퍼 고메스는 “그들이 우리를 더 위협하겠지만 더 강하게 맞설 것”이라며 “우리는 옳은 것과 틀린 것을 알고 있고, 분명한 건 저들이 틀린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션 파넬 미 국방부 수석대변인은 이날 소셜미디어(SNS)에 “약 700명의 해병대가 캠프 페들턴에서 LA로 질서 회복을 위해 배치되고 있다”고 밝혔고, 미 북부사령부도 “제1 해병사단 산하 700명은 LA 지역에서 연방 인력과 재산을 보호 중인 ‘태스크포스 51’ 아래 운용되는 병력과 함께 원활하게 통합될 것”이라며 해병대 투입을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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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연방 건물 앞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방위대와 경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다. 로스앤젤레스=강태화 특파원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더해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2000명의 추가 배치를 지시했다. 기존에 투입 결정된 주방위군 2000명을 포함할 경우 LA 시위에 군 병력 4700명이 투입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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