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남미서 삽질하는 K상사맨…수출 첨병서 안보 첨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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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광물자원 개발 나선 종합상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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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흙산을 누벼 니켈 광산을 찾아낸 것도, 아르헨티나 북서부 옴브레 무에르토의 리튬 염호(鹽湖)를 찾아낸 것도 모두 ‘K상사맨’들이었다. 이들은 전 세계를 누비며 ‘돈 되는’ 광물 자원을 찾고 있다. 중국이 장악한 희귀 광물 희토류가 미·중 무역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키(key)가 된 것처럼, 광물 자원은 특정 산업을 멈춰 세울 수도 있고 무역협상의 판을 뒤집을 수도 있는 핵심 자원으로 떠올랐다. 한국 기업들도 미국의 관세 정책과 중국의 ‘광물 패권주의’로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전 세계를 훑으며 자원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광물 전쟁 현장을 살펴보자.

일러스트=김지윤
◆“돈 되는 건 뭐든” 상사맨, 광물도 캔다=돈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사고파는 회사가 있다. 1975년 수출 진흥을 위해 종합상사무역제도를 시행하면서 탄생한 종합상사다. 한국의 수출 첨병 역할을 한 종합상사는 2000년대 이후 큰 변신에 나선다. 단순 무역을 넘어 자원 사업에 뛰어든 것. 석탄·가스 등 화석연료부터 팜유·옥수수 등 식량까지 각종 자원의 개발·생산·유통·판매 모든 과정이 사업 대상이었다. 상사맨들은 촘촘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신사업을 개척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LX인터내셔널과 포스코가 2차전지 소재로 쓰이는 니켈과 리튬을 찾아 나선 것도 그 일환이다.
LX인터내셔널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AKP광산을 인수했다. 지분 60%를 1330억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고, 생산 물량도 모두 갖는 조건이었다. 국내 기업 가운데 니켈 광산 경영권을 직접 확보한 건 LX인터내셔널이 처음이었다. 2차전지 양극재 핵심 소재인 니켈은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 확대로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되는 고가의 광물이다.

김영옥 기자
AKP광산에선 3600만t 이상의 니켈 원광을 채굴할 수 있다. 전기차 약 700만 대분의 배터리를 만들 양이다. 홍장표 LX인터내셔널 인니AKP 담당이사는 “인도네시아 지도에 광산 매입 후보지를 하나씩 지워가며 200개가 넘는 광산을 다 뒤졌다”고 설명했다.
포스코그룹은 또 다른 2차전지 소재인 리튬을 찾아 나섰다. 2018년 포스코그룹이 아르헨티나 염호를 인수할 때 “너무 비싸게 샀다”는 말이 나왔지만, 2년 뒤 그 호수에서 ‘6배 잭폿’이 터지며 세간의 우려를 한 번에 잠재웠다. 포스코그룹은 8억4000만 달러(약 1조1400억원)를 추가 투자해 리튬을 수산화 리튬으로 가공하는 시설을 지었다. 이 공장에선 연간 약 60만 개의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수산화 리튬을 생산한다.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핵심 광물의 국내 공급망 구축과 자립성 확보를 위해서 정부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사업계는 자원·에너지 등 신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LX인터내셔널은 호주·필리핀 등 구리 부존국을 탐사한다. 전기 전도성이 높은 구리는 전력 케이블과 데이터센터 등에 널리 쓰인다. GS글로벌은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삼성물산과 현대코퍼레이션은 태양광 등 신에너지 사업을 추진한다.
종합상사에 광물 탐사는 미래 사업 기회지만, 국내 산업계엔 사업의 승패를 가르는 지금의 문제다. 광물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배터리·자동차 등 대규모 첨단 산업 시설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 미국 포드가 일주일간 시카고 공장의 SUV 생산을 중단하고, 제너럴모터스(GM)가 중국으로 생산시설 이전을 검토한 것 모두 중국이 지난 4월부터 단 7종의 희토류 수출을 통제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광물 패권’ 중국의 공급망 장악법=글로벌 광물 공급망에서 영향력이 가장 센 나라는 중국이다. 세계에서 네 번째(약 960만㎢)로 국토 면적이 넓은 중국엔 여러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베트남, 브라질, 러시아 등 다른 지역에도 적지 않은 희토류가 분포하기 때문이다.

김영옥 기자
중국이 글로벌 광물 공급망을 장악한 건 채굴 자체가 아닌 그다음 단계인 광물 ‘가공’에서다. 자연에서 캐낸 광물 덩어리를 물리적으로 쪼개 선별(선광작업)하고, 화학 반응을 통해 목적 원소를 분리·추출(제련작업)하는 작업이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가공 산업을 육성했다. 채굴에 집중한 다른 국가를 따돌리고 제련 기술 격차를 벌린 비결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정제 흑연의 95%를 공급하고, 희토류(91%)·망간(91%)·코발트(78%)·리튬(70%) 등 핵심 광물 정련 가공을 대부분 장악했다.
다른 나라는 왜 광물 가공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을까. 환경 문제가 크다. 광물을 분리·추출할 때 독성 기체와 폐수 등이 발생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희토류 1t을 추출하는 데 황산 등 독성가스 6300만 리터(L), 산성 폐수 20만L, 방사성 물질 1.4t 등이 나온다. 환경 규제가 엄격한 선진국은 정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광물 가공 시도조차 어렵다.
어니스트 샤이더 로이터통신 에너지 전문 기자는 지난해 책 『광물 전쟁』에서 전 세계에서 리튬 최대 생산국 칠레와 호주가 현재는 가공을 중국에 맡기게 된 과정을 전했다. 그는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희토류 산업을 개척했으나, 산업 전체가 중국으로 이동하는 것을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광물 공급망 통제를 경고한 존 폴 헬베스턴 미국 조지워싱턴대 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광물 가공 분야는 중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문 인력과 가장 우수한 인프라를 갖고 있다”며 “미국 등이 이를 따라잡으려면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광물 안보 점수, 한국 35점 일본 70점=중국 광물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는 더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발표한 ‘2025년 희유금속 원재료 교역분석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지정한 37개 핵심 광물 가운데 22개는 지난해 중국 수입 비중(수입액 기준)이 전년 대비 늘었다. 중국 수입 비중이 85%였던 희토류와 리튬은 지난해 의존도가 각각 88%, 87%까지 높아졌다. 반도체에 쓰이는 갈륨(43%→75%)의 중국 의존도도 크게 높아졌고, 배터리 소재인 코발트(19%→29%)는 중국이 수입국 1위로 올라섰다.

김주원 기자
수입 물량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에 쓰이는 희토류 영구자석과 전자회로 등에 쓰이는 희토류 금속의 중국 수입 의존도(중량 기준)는 각각 99.3%, 80%에 달했다. 2차전지의 양극재·음극재로 쓰이는 인조흑연(98.8%), 천연흑연(97.6%), 니켈·코발트·망간(NCM) 전구체(94.1%) 등도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 중이다.
정부가 자원 안보에 소극적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24 광업요람에 따르면 정부가 해외 자원 개발을 위해 한국광해광업공단에 출연한 지원금은 2014년 378억원에서 2023년 14억원까지 줄었다. 정부 역할은 줄고 민간 투자에만 의존하다 보니 2023년 6대 주요 광물(유연탄·우라늄·철·동·아연·니켈)에 대한 국내 자원개발률은 34.4%에 그쳤다.
반면 일본은 해외 자원 개발을 위한 민관 협력체계가 자리 잡았다. 2004년 설립된 국영 에너지 기업 석유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가 출자나 채무보증 형태로 자금을 지원하면, 민간 기업이 글로벌 네트워크로 시장을 개척하는 방식으로 핵심 자원을 확보한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2023년 일본의 6대 주요 광물 자원개발률은 한국(34.4%)의 2배가 넘는 69.9%였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수입처를 다변화를 넘어 직접 자원을 탐사하고 채굴·가공하는 기술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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