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선독립 호소한 '파리장서'…초안 쓴 장석영 선생 뜻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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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배포된 파리장서 한문본. 사진 심산 김창숙 기념관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 경북 칠곡군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일제시대 국제사회에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고자 만들어진 파리장서(巴里長書)의 초안을 집필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회당(晦堂) 장석영(1851~1926) 선생의 서거 100주년을 앞두고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회가 공식 출범했다.

장석영 선생은 1851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나 평생 유학 교육에 힘쓰며 위정척사(衛正斥邪·올바른 것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배척한다) 운동에 참여한 학자다.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 전국에 파급될 때 칠곡 지역의 국채보상회 회장으로 추대돼 활동하기도 했다.

서거 100주년 기념사업회 출범

특히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파리강화회의(파리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곽종석·김창숙 등과 협의해 ‘파리장서’의 초안을 직접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파리장서에는 유림 137명이 서명했다.

파리장서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하려고 했던 독립청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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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장석영 선생.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근래 남의 생명을 해쳐가며 나라를 침탈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 침탈 이전 평화 상태로 돌려놓으려는 파리강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 역시 만국의 일원으로서 피 끓는 심정을 토로한다. 조선 독립과 인류평화를 되찾을 수 있도록 조선문제를 고려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자진해 죽을지언정 맹세코 일본의 노예는 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유학자 대표로 심산(心山) 김창숙(1879~1962) 선생이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간 뒤 영문본 2000부와 한문본 3000부를 인쇄해 파리평화회의와 각국 공관, 중국 정계 등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현재까지 번역본이나 공식 접수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내년 7월이면 장석영 선생의 서거 100주년이다. 지난 10일 칠곡군 군민회관에서 유림, 학자, 주민, 후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사업회가 공식 출범했다.

청소년 역사 답사 등 기획 중

회당 선생의 현손인 장세민씨는 “후손 중심의 추모로 시작하려 했지만 회당 선생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되새기기 위해 학계와 지역사회가 함께 기념사업회로 확대 출범하게 됐다”며 “100년 전의 외침을 오늘날 청소년과 주민들이 이어가게 된 것만으로도 큰 감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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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경북 칠곡군 군민회관에서 열린 ‘회당 장석영 선생 기념사업회 창립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선생의 뜻을 기리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유림, 학자, 주민, 후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 칠곡군

기념사업회는 선생이 망명 중 남긴 기록인 ‘요좌기행(遼左紀行)’을 따라가는 역사 답사, 유적지 표지석 설치, 스승께 음식을 올리며 예를 갖추는 유교 전통의 석채례(釋菜禮) 행사 등을 구상 중이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역사 체험 프로그램이 핵심이다.

특히 선생의 망명길이 시작된 왜관 나루터(석전진) 일대를 고증해 역사 현장으로 되살리는 작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회당 선생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 자료집 발간, 전국 학술대회 개최 등도 계획하고 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장석영 선생은 칠곡이 낳은 인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기억하고 기려야 할 독립운동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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