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암 치료 끝났는데 왜 계속…" 가장 상처주는 말 된다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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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이후 삶의 질 관리
면역력 떨어져 대기오염 등 환경 변화에 민감
흡연·음주·비만 피하고 권장 예방접종은 필수
암 건강 클리닉 등서 통합적인 건강관리 받길
암 투병 후 몰려오는 불안·피로, 혼자 감당 말고 주변과 소통하세요 [Health&]

“치료만 끝나면 예전처럼 돌아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네요.” 위암 수술을 받고 2년째 생존 중인 김정희(가명·58)씨는 새벽마다 잠을 설친다. 오른쪽 복부가 묵직하거나 감기 기운이 있으면 행여 재발일까 불안하다.
3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과 수술을 받은 이수연(가명·45)씨는 여전히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챙긴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나가면 여느 때처럼 청소기를 돌리고 반찬을 만들고 빨래를 갠다. 그는 “림프부종 때문에 팔이 무겁다. 매일 두통도 심하지만 더는 아프다는 말을 하기도 미안하다”며 혼자 끙끙 앓는다.
전체 인구의 약 5%, 20명 중 1명은 이들처럼 암 생존자다. 대다수는 치료가 끝나면 곧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길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몸은 여전히 낯설고, 손쉽게 하던 일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피로, 통증, 부종 같은 후유증은 흔하다. 암 치료로 외모가 달라지거나 인공항문(장루)을 달게 되는 경우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미세먼지·감염에 더 취약 … 외출 시 마스크 착용 권고
‘치료가 끝났는데 왜 계속 아프냐’는 주변의 무심한 반응은 또 다른 상처가 된다. 불면, 우울, 자존감 저하에 삶의 의미를 잃는 감정까지 겹쳐지기도 한다. 중앙대 광명병원 외과 손희주 교수는 “암 치료가 끝나고 가장 흔한 오해는 ‘이제 다 나았겠지’라는 말”이라며 “수술, 항암 과정에서 겪은 신체적 불편함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해 깊은 우울감과 좌절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도움을 주고 싶어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주저할 때도 많다. 이럴 땐 요리나 빨래처럼 구체적인 일을 부탁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적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피로를 덜고 회복에 힘이 된다.
재발의 두려움은 암 생존자 10명 중 7명이 느낀다. 이 중 7%는 일상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공포에 시달린다. 배가 약간 아프거나 살이 좀 빠진 것만으로도 재발 신호로 인식해 불안을 키운다. 재발을 의심할 만한 증상을 정확히 알아두는 것이 불안 조절에 도움된다.
암 생존자는 면역이 약해진 상태다.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서울성모병원 신현영 교수팀이 지난 17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초미세먼지에 많이 노출된 암 생존자는 심근경색·뇌졸중 위험이 10% 이상 높다. 이 위험은 코로나19 거리두기 시기에는 크게 줄었다. 마스크 착용과 외출 자제가 보호 효과를 준 것이다.
신 교수는 “초미세먼지는 폐뿐 아니라 장내 미생물에도 영향을 준다. 전신 염증을 일으켜 심혈관 질환 발생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오염이 심한 날엔 외출을 줄이고, 나갈 땐 마스크 착용을 철저히 하는 게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다.
감염은 면역 약한 생존자에게 치명적이다. 암 생존자에게 필수로 권장되는 예방접종은 독감, 폐렴구균, Tdap(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이다. 9~26세의 암 생존자면 HPV(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이 필수다. 일반인보다 HPV 관련 2차암(자궁경부암·항문암·구강암 등) 발병 위험이 최대 70%가량 더 높다.
가족·친구·의료진과 감정 나눠야
흡연, 음주, 비만은 재발·2차암·만성질환 위험을 높이는 요소다. 그런데 남성 암 생존자의 56%는 음주 중이며 22%는 흡연을 한다. 전체 암 생존자의 29.5%는 비만으로, 일반 인구(31.3%)와 큰 차이가 없다. 암 치료가 끝나면 이제 괜찮다는 안도감에 경계심이 느슨해진다. 이전의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심리가 작동한다. 피로·불안·외로움 같은 스트레스를 술, 담배, 폭식으로 푼다.
고대안산병원 흉부외과 황진욱 교수는 “폐암은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금연은 말할 것도 없다.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고혈압·당뇨 같은 기저 질환도 함께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만으로 인한 고지방·고혈당 상태는 만성 염증을 만들어 암세포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 된다. 유방암, 대장암, 간암, 자궁내막암, 췌장암 등은 비만과 밀접한 암이다.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유태경 교수는 “유방암은 치료 후 5년이 지나도 재발할 수 있고, 2차암으로 새로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며 “음주를 피하고 체중을 잘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줄인다”고 강조했다.
암 치료 후 생활습관 관리와 정서적 지지는 다시 살아가는 힘을 회복하는 길이다. 다만 현실에선 정기검진 외의 관리는 대부분 알아서만 하려다 보니 헤매기 쉽다. 예컨대 금연을 결심했다면 금연 클리닉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신현영 교수는 “암 생존자의 건강은 일상 속 습관과 환경에 따라 방향이 바뀐다. 병원 내 암 건강 클리닉 등에서 통합적인 건강관리 체계를 조언받길 권한다”고 했다. 손희주 교수는 “혼자 이겨내려 하기보다 가족, 친구, 의료진과 소통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이 생존 이후 삶의 리듬을 되찾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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