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美 기습, 검은 백조 아닌 회색 코뿔소…도발 일삼던 김정은 충격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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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안보 전문가 7인 진단

미국 공군 B-2 스텔스 폭격기가 이란의 주요 핵 시설을 공격한 뒤 22일(현지시간)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 기지에 귀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기습은 ‘블랙 스완(Black Swanㆍ검은 백조)’이 아니라 ‘그레이 라이노(Grey Rhinoㆍ회색 코뿔소)’에 가깝습니다.”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패트릭 크로닌 아시아ㆍ태평양 안보석좌는 ‘미드나잇 해머(한밤의 해머)’ 작전으로 명명된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에 대해 22일(현지시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평했다.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 위험’을 뜻하는 검은 백조가 아니라 ‘충분히 예견됐지만 외면했거나 방치해온 위험’인 회색 코뿔소라는 의미다. 이란이 수십 년에 걸쳐 역내 저강도 분쟁을 벌여 왔고 동시에 핵개발 야욕도 꾸준히 키워온 결과라면서다.
‘2주간의 협상 시한’ 메시지를 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후 이틀 만에 이란 핵시설 공습이라는 군사 결단을 내린 배경, 중동 내 확전 가능성, 한반도 안보 지형에 미칠 영향 등을 짚어보기 위해 중앙일보는 미국의 대표적 외교안보 전문가 7명을 이날 긴급 인터뷰했다. 그 결과를 주요 쟁점 5가지로 추려 문답으로 정리한다.

신재민 기자
①트럼프의 참전 결단, 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데니스 와일더 조지타운대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를 통해 이란의 핵 야망을 제한하려는 수년간의 노력이 실패한 끝에 이제 핵 프로그램을 단념시킬 때라고 결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당 수준 진전된 이란의 핵 능력이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방아쇠를 당겼다는 얘기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데니스 와일더 조지타운대 선임연구원. 사진 조지타운대 홈페이지
미 특전사 작전부사령관 출신의 데이비드 맥스웰 아시아태평양전략센터(APS) 부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온 외교 노선 ‘힘을 통한 평화’와 ‘억지력의 복원’ 두 가지를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적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 타개책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맥 셸리 아이오와주립대 정치학 교수는 “‘타코’(TACOㆍTrump Always Chickens Outㆍ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도망간다)’ 행보로 강경하지 않다는 인상을 준 트럼프 대통령이 ‘크고 아름다운 법안’ 등 주요 입법과제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외부에 관심을 돌리는 군사행동을 택한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위기시 대통령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국기 결집(rally round the flag)’ 효과를 노렸을 것”이라고 했다.

맥 셸리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정치학 교수. 사진 아이오와주립대 홈페이지
②이란 핵시설, 얼마나 파괴됐나
전문가들은 정확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면서도 이란의 핵 야망이 종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 출신의 핵 비확산 전문가인 올리 헤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이란이 은닉한 핵시설이 없다는 보장이 없는 한 핵 활동을 중단했다고 결론짓는 것은 이르다”며 “이란이 가진 60% 농축 우라늄을 무기급(90% 농축)으로 끌어올리는 데 단 며칠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 출신의 핵 비확산 전문가인 올리 헤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사진 스팀슨센터 홈페이지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ㆍ군축담당 특보 역시 “이번 공습이 포르도ㆍ나탄즈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상당 기간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이란은 농축 우라늄 재고를 이미 비밀시설로 이전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란의 핵무기 위협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오히려 이번 공습으로 이란이 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경민 기자
③확전 수렁에 빠질 가능성은
전면전 확전 여부는 이란의 ‘보복’ 대응 수위에 달려 있다는 관측 속에 이란이 보복을 가하더라도 제한적 수준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와일더 연구원은 “이란이 보복을 시도할 수 있지만 미국은 준비가 매우 잘 돼 있다”며 “이란 지도부가 미국을 공격할 경우 정권이 붕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공습은 미국의 엄청난 군사 능력을 보여준다. 북한은 우려해야 하며 중국은 이제 대만 공격을 재고할 것”이라고 했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 허드슨연구소 아시아ㆍ태평양 안보석좌. 사진 허드슨연구소 홈페이지
크로닌 석좌는 “호르무즈 해협이 고위험 전략 요충지가 될 것”이라고 봤다. 이란 의회는 전날 전 세계 원유 운송량의 약 20% 이상이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안을 결의했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의 최종 결정이 남아있는데, 현실화할 경우 유가 급등 등 전 세계 경제에 큰 충격파가 예상된다. 헤이노넨 연구원은 “다른 국가들이 분쟁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비공식 채널의 대화도 진행 중일 것”이라고 했다.
④북 김정은, 이번 공습 어떻게 봤을까

미국 특전사 작전부사령관 출신의 데이비드 맥스웰 아시아태평양전략센터(APS) 부회장. 현재 비영리 민간단체 ‘스피릿 오브 아메리카’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스피릿 오브 아메리카 홈페이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는 ‘충격’이었을 거라는 데 전문가 의견이 모아졌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군사작전 수행 의지가 없다고 보고 오랫동안 도발을 감행해온 북한은 미국의 군사행동을 매우 우려스럽게 여기며 봤을 것”이라고 했다.
맥스웰 부회장 역시 “이스라엘에 대규모 군사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이란과 한국에 대한 전면전 능력을 보유한 북한은 다르지만 이란 폭격으로 인해 김정은은 자신에게 비슷한 일, 아니 더 나쁜 일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연합뉴스
아인혼 전 특보는 “미드나잇 해머 작전에서 분명한 한 가지는 미 군사작전의 규모와 대담함이 매우 인상적이라는 것”이라며 “러시아ㆍ중국ㆍ북한 지도자들은 분명히 그 점을 주목했을 것”이라고 했다.
⑤한반도 안보에는 어떤 영향 미칠까
셸리 교수는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은 평양에서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과 정권 생존에 대한 명백한 위협으로 해석될 것”이라며 “따라서 한반도 긴장 고조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ㆍ군축담당 특보. 중앙포토
이번 사태가 장기화해 미국이 중동에 몰두할 경우 아시아 우선 전략의 후퇴가 불가피할 거란 예상도 나온다. 크로닌 석좌는 “미국이 이란과의 장기적 갈등에 휘말려 중동 중심으로 자원을 재배치하면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자체 방위 강화 필요성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단순한 군비 지출 증액을 넘어 지역 안보 파트너와 더 깊은 협력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한국은 일본ㆍ호주ㆍ인도와 같은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조가 더욱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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