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군기지 공격해 체면 살린 이란…美 포르도 공습도 약속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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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카타르 알우데이드 공군 기지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장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전격 발표한 이스라엘·이란 휴전은 미국과 이란 사이 사전에 조율된 ‘약속 대련’ 직후 이뤄졌다. 이란은 절제된 미사일 보복, 미국은 반응을 자제하며 긴장 해소의 메시지를 교환했다. 장기전과 확전이 부담스러웠던 양국이 서로의 상징적 시설을 타격했다는 ‘체면 살리기’에 만족하고 휴전의 명분을 찾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은 이날 미국의 자국 핵시설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카타르 알우데이드 공군 기지에 미사일 14발을 발사했다. 하지만 이란은 공격 전 미국과 카타르에 계획을 미리 통보했다. 카타르는 공습 1시간 전 자국 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고 미군 역시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이란이 쏜 미사일 14발 중 13발이 격추됐다. 이란이 공격 계획을 사전에 통보해준 데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란으로선 ‘보여주기식 공격’이란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공습을 당한만큼 대응 공격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보복 감행시 나타날 미국의 분노도 두려웠다. 명분을 얻으면서도 미국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는 길을 택해야 했다.

박경민 기자
이런 배경하에 이란은 공격의 타깃을 알우데이드 기지로 정했다. 1996년 건설된 이곳은 미군 중부사령부(USCENCOM)의 지역본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약 1만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중동 내 최대 미군 기지다. 각종 전투기와 수송기, 무인기(드론) 등 항공기도 100대 가량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중동을 순방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으로선 중동 최대 미군기지를 공격했다는 상징성을 가져가려 했다”며 “중동 국가 중 이란과 가장 우호적인 관계인 카타르에 기지가 위치했다는 점에서 ‘보여주기식 공격’을 사전조율하기가 수월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약속 대련’으로 확전을 막으면서도, 미국에 상징적인 기지를 공격해 체면을 차렸다는 얘기다.

23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상공에서 이란이 쏜 미사일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공격 후 성명에서 “(알우데이드 기지는) 미 공군의 본부이자 서아시아 지역에서 미 테러리스트 군대의 가장 큰 전략 자산”이라고 밝혔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도 “작전에 쓰인 미사일 수는 미국이 우리 핵시설을 공격하는 데 사용한 폭탄 수와 동일하다”며 “이번 행동은 형제국가 카타르와 그 국민에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란은 5년 전에도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2020년 1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이라크를 방문한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드론 공격으로 암살하자, 이란은 이라크 알아사드 미군 공군기지 등을 탄도미사일로 보복 공격했다. 이때도 이란은 이라크에 미사일 발사를 알려 미군이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역시 이란의 ‘약속 대련’에 반색하며 휴전을 재빨리 밀어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은 하고 싶은 대응을 다 마쳤고, 이제 증오를 끝내고 평화와 조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나는 이스라엘도 같은 길로 가도록 적극적으로 권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곧바로 이스라엘과 이란의 휴전을 발표했다.

이란 핵시설을 타격하는 한밤의 해머 작전을 21일(현지시간) 수행한 미군 B-2 폭격기가 작전을 마치고 미주리주 화이트먼 공군기지에 착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도 이란과의 확전은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이틀간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그가 중대한 문제가 걸려 있는 사안에서도 거래 성사를 위해 거친 위협과 극단적인 조치를 과감히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란 공습’ 이란 사상 초유의 일을 벌였지만, 어디까지나 협상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카드였다는 얘기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트럼프로선 이란의 지하 핵시설 ‘최후 보루’로 떠오른 포르도를 공격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란 상징성을 얻은 데다 이란의 적극적인 협상 의지를 끌어낸 것에 만족하고 출구전략을 모색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위성사진 업체 막사 테크놀러지가 19일 촬영한 이란 포르도 핵시설 일대의 위성 이미지. 핵시설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따라 모두 16대의 화물트럭이 늘어서 있다. AFP=연합뉴스
일각에선 미국의 포르도 공습도 약속대련이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위성사진업체 막사테크놀러지가 공개한 지난 19일 위성 사진에는 포르도 핵시설 진입로에 16대의 화물트럭이 늘어선 모습이 담겼다. 다음 날 트럭 대부분은 이 시설에서 북서쪽으로 약 800m가량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다. 다음날 사진엔 핵시설 입구 주변에 불도저 여러 대와 트럭들이 있었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 프로그램 소장은 “(이란이) 모든 걸 멈추고 제거할 수 있는 걸 제거한 뒤 봉인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대비가 가능한 건 미국이 은밀하게 공습을 사전에 알렸기 때문이란 의혹도 제기된다. 성일광 교수는 “이라크 언론에서 이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관련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며 “공습 직전 고지를 안 했더라도 미국이 그전부터 공공연하게 포르도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보였기에 이란으로선 대비할 시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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