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조롱의 ‘엘롯기’ 이제는 영광의 ‘엘롯기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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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앉은 LG, 롯데, KIA의 팬들(위부터 시계방향). ‘엘롯기’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유명하다. [사진 KBSN 중계화면 캡처]
처음에는 조롱하려고 묶어 부르던 명칭, 이른바 멸칭이었다. 이젠 똑같이 불러도 그 전과 전혀 다른 의미다. 오히려 호칭의 행간에 부러움이 박혔다. 처음엔 ‘엘롯기’로 출발했다. 팬들이 만들어 불러 나름의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프로야구 특수 동맹이다. 멤버도 위상도 시간과 함께 바뀌었다. ‘엘롯기한’을 거쳐 ‘엘롯기한삼’에 이르렀다.
올 시즌 KBO리그에서는 “성적은 인기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인기가 성적순”일 수도 있지만, 현상적으로는 인기 구단이 순위도 높은 쪽이다. 지난 23일 기준 순위를 보면, 한화 이글스가 선두고, 2위 LG 트윈스, 3위 롯데 자이언츠, 4위 KIA 타이거즈, 5위 삼성 라이온즈다. 한화, LG, 롯데는 한 달 넘게 3강을 형성하고 있고, 지난달 7위로 처졌던 KIA가 6월 상승세를 타고 4위로 올라섰다. 삼성은 최근 3연패로 주춤하지만 꿋꿋이 5강을 지킨다.
이들에는 좋은 성적 말고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전국구 인기 구단이라는 점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 시청률 순위를 보면 알 수 있다. 방송사 별로 차이가 있지만, 시청률 부동의 1위는 한화다. KIA, 롯데, LG, 삼성이 그 뒤를 따른다. 성적 5강이 흥행도 5강인 셈이다. 인기 구단이 성적까지 좋자 방송사 관계자들은 “올 시즌 KBO리그 전체 시청률이 역대 1위를 찍을 수도 있겠다”고 전망한다.
LG·롯데·KIA의 구단 명칭 첫 글자를 합친 ‘엘롯기’는 KBO리그의 역사를 꿰뚫는 별명이다. 롯데는 2001년부터 4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그 뒤를 이어 2005년과 2007년에는 KIA가, 2006년과 2008년에는 LG가 최하위에 그쳤다. 그 시절 세 팀을 조롱하며 불렀던 명칭이 ‘엘롯기’다. KIA가 2009년 통합우승을 차지하고, 롯데와 LG도 간간이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으며 ‘엘롯기’ 동맹의 해체 조짐도 보였다. 하지만 한 구단만 부진해도 어김없이 ‘엘롯기’라는 말이 등장했다.
‘엘롯기’ 동맹은 시간이 흐르며 세를 불렸다. 2010년을 전후해 한화가 합류했다. 한화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연속으로 가을야구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대전구장에선 늘 주황색 물결이 출렁였다. 대전·충청 지역 팬들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응원가를 열창했다. 성적과 인기가 반비례했던 팀들을 묶어 부른 ‘엘롯기’가 재소환돼 ‘엘롯기한’이 생겨났다.
2020년대 들어 삼성이 가세했다. 2010년대 ‘왕조’를 구축했지만, 삼성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포스트시즌을 TV로 지켜보는 기간이 늘었다. 2016년 삼성라이온즈파크가 개장하자 성적과 무관하게 관중은 증가세를 보였다. 그런 현상은 그 전의 ‘엘롯기’ 및 그 뒤를 이은 ‘엘롯기한’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프로야구 최신 동맹 ‘엘롯기한삼’의 탄생 배경이다.
영욕의 세월을 보낸 ‘엘롯기한삼’은 올 시즌 관중 동원도 압도적이다. 한화는 새로 지은 한화생명볼파크에서 33차례나 매진을 기록했다. 4월 13일 키움 히어로즈전부터 지난 5일 KT 위즈전까지는 24경기를 내리 매진시켰다. 롯데도 22경기 연속 홈경기 매진으로 인기를 증명했고, 삼성과 LG는 평균 관중 2만2588명과 2만1490명으로 각각 1, 2위다. 지난달까지 부진으로 흥행이 저조했던 KIA도 이달에는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돈 올 시즌은 최하위 키움을 빼고는 격차가 촘촘해 전문가도 가을야구에 참가할 5개 팀을 쉽게 골라내지 못한다. 순위 싸움은 시즌 막판까지 이어질 태세다. 무더워지는 여름 날씨처럼 ‘엘롯기삼한’으로 대표되는 상위권 동맹의 순위 싸움과 흥행몰이도 달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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