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러브레터’ 뛰어넘은 ‘오세이사’…상실이 슬프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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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연 뮤지컬 무대. [사진 라이브러리컴퍼니·유니버셜라이브]

이치조 미사키(一條岬)는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작가다. 그는 2019년 일본에서 출간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한국어판은 2021년 출간, 이하 『오세이사』)로 일본 라이트 노벨계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현재까지 일본에선 스핀오프 소설을 포함해 약 80만 부, 한국에선 단독으로 약 50만 부가 판매되며 ‘오세이사 열풍’을 불러 일으켰지만, 침묵을 지켰다.

“작가보다 작품이 앞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작가는 이런 이유를 들었다. 한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그의 멋쩍어하는 모습에 소설 속 주인공 가미야 도루가 겹쳤다. 그는 본업이 따로 있어 얼굴, 나이 등 신상정보를 밝히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필명인 ‘이치조 미사키’ 중 이름인 ‘미사키’만 본명에서 가져왔다.

작가가 된 계기가 있나.
“20대 후반일 때, 건강했던 친구가 갑자기 죽는 일이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야 그 사람과 함께하던 일상이 얼마나 귀중했는지 알게 됐다. 이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오세이사』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18세 소녀 히노 마오리와, 얼떨결에 그에게 고백한 소년 가미야 도루의 연애담. 매일 자기 전의 기억을 잃는 마오리, 그걸 알면서도 마오리와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도루의 애달픈 이야기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소설 후기에서 “잃을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형태로든 ‘상실’을 겪게 된다. 이 경험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대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달을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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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이사’ 책 표지. [사진 오팬하우스]

한국에선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의 인기가 대단했다. 2022년 일본에서 개봉 1달 만에 100만명의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는, 국내에선 총 121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 실사영화 중 흥행 1위로, 재개봉 실적을 제외하면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 약 115만명)를 뛰어넘은 성적이다. 이에 한국판 영화 ‘오세이사’도 제작 예정이고, 동명의 뮤지컬도 만들어졌다. 한국 라이브러리컴퍼니와 유니버셜라이브가 제작, 13일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초연 개막했다.

그는 『오세이사』 이후 『오늘 밤, 거짓말의 세계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랑을』,

『이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줘』 등 라이트노벨 장르의 책을 냈다. 공통점이 있다면, 주인공들의 설정이다.

주인공들은 각자의 결핍을 갖고 있다.
“신체적 제약이나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민감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세이사』 속 인물과 본인이 비슷한 점이 있다면.
“도루는 스스로 요리를 하고 위생 관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나와 비슷하다. 마오리는 매일 기억이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이다. 그 태도를 ‘의지’라고 보는 내 가치관이 담겼다.”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일본에서도 내 글을 사랑해 주셨지만,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크게 느꼈다.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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