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유족에 뺨 맞고도 "믿어달라"…軍 '자해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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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전사망민원조사단(민조단) 부대원들이 국립현충원에서 순직자의 묘소에 예우를 표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1995년 최전방 경계부대의 일반전초(GOP)에서 근무하던 육군 중위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그의 옆에는 K2 소총이 놓여 있었다. 군에서는 단순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던 A씨의 죽음은 29년 만인 지난해 순직으로 전환됐다. 유족들이 국방부 전사망민원조사단(민조단)에 민원을 제기, 재조사를 거친 끝에 A씨의 죽음과 군 복무 간 연관성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린 게 결정적이었다. 민조단은 “험악한 산악의 야간 순찰 등으로 인한 체력 저하, 중대장의 질책, 병사들과의 갈등이 복합적으로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 2022년 육군 B일병은 입대한 지 석 달 만에 21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육군은 1차 조사에서 B일병이 지병 치료를 위해 처방받은 약물을 스스로 과다 복용한 것으로 보고 군 복무와 사망 간의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유족들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민조단 재조사에선 다른 결론이 나왔다. “B일병이 사망할 당시는 코로나19로 부대 격리가 이뤄질 시기로, 이로 인한 고립감과 지병의 재발이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B일병 역시 지난해 9월 순직이 인정됐다.

‘자해 사망’, 즉 군 복무 중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은 군내 유일한 사망사고 재조사 기관인 민조단의 과거와 현재를 꿰뚫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비극이다. 민조단의 창설 계기 자체가 1998년 판문점(JSA) 비무장지대 경계 초소에서 일어난 고(故) 김훈 중위(당시 25세) 사망 사건이었다. 김 중위의 사망 원인도 당초 자살에서 진상규명 불능 등으로 결론이 바뀌었는데, 관련 규정이 바뀌면서 19년 만인 2017년 8월 순직이 인정됐다.

김 중위 사건으로 꾸려진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은 이후 군의문사특별조사단(1999년), 국방부 조사본부 사망사고민원조사단(2006년)을 거쳐 현재의 조사본부 예하 민조단 부대 창설(2022년)로 이어졌다.

실제 지난 20여년 간 자해 사망은 민조단에 제기된 민원 유형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고사·병사·변사 등 사망 유형을 통틀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2007년·2008년을 제외하고는 자해 사망 민원 접수가 꾸준히 1위였다. 비중 자체도 2020년 32%에서 지난해 41%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저출산 여파로 전체 현역 장병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우려는 더 커진다.

관련 법 규정은 군 복무 중 자해 사망도 순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뀐 지 오래다. 지난 2012년 5~6월 국가권익위원회의 권고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등을 통해 “자살한 군인의 사망 원인이 공무상 사고나 재해로 인한 자해 사망일 경우 순직으로 인정할 수 있다” “국가유공자도 될 수 있다” 등 판단이 잇따라 나왔다.

이후 국방부는 군인사법과 시행령, 관련 훈령 등을 고쳤다. 현재는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 수행이나 교육 훈련 중 사망’한 사례라도 군 복무 연관성이 확인되면 순직(순직-III 유형)으로 인정하는 추세다.

다만 여전히 육·해·공 등 각군의 1차 조사에서 곧바로 복무 연관성을 인정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2015~2022년 각군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순직·전사 여부를 결정하는 보통 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선 자해 사망 427건 가운데 52.9%(226건)만 순직이 인정됐다. 반면 민조단의 재조사 등을 근거로 재심의하는 중앙 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선 자해 사망 799건 가운데 95%(759건)가 순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대도, 부모도 못 받아들이는 자해 사건 규명

군 복무 중 자해 사망은 부대도, 유족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이다. 부대는 “장병 개인의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하고, 유족은 “멀쩡하던 아이가 군대에 가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사망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민조단 조사관들은 감정이 격해진 유족에게 뺨을 맞거나 멱살잡이를 당하기도 한다.

앞선 육군 B일병의 모친 C씨도 처음 민조단에 민원을 접수할 땐 “어차피 똑같은 군 수사 기관 아니냐”며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하나뿐인 아들을 나라에 내어준 C씨가 돌려받은 건 결국 싸늘한 주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조단의 재조사를 통해 B일병이 순직을 인정받을 길이 열리자, C씨는 그제야 안도하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믿어 달라고 하셨던 말, 이제야 이해가 간다”며 민조단에 사의를 표했다.

이와 관련, 민조단 관계자는 “결국 나라가 필요에 의해 부모 곁에서 데려온 자식들이 복무 중 사망한 것”이라면서 “망자가 군복을 입고 있는 한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가족들도 믿고 보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민조단의 조사관은 “사망 원인이 이성 문제 등 부모도 몰랐던 자녀의 사생활과 복합적으로 결부된 경우도 있다”며 “이런 때는 조사 결과를 설명할 때 부모님 가슴에 못을 두 번 박는 게 될까 봐 입을 떼기가 정말 어렵다”고 토로했다. 현역 군인들인 조사관들도 한 번 조사할 때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는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70년 전 자살도 "재조사 해달라" 달라진 풍경

민조단이 최근 군 복무의 연관성을 인정한 사례들을 보면, 직접적인 가혹 행위가 없었더라도 다양한 환경 요소를 고려하는 추세다. 또 장교 역시 의무 복무 기간(최장 10년)에 발생한 자해 사망은 복무 연관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달라진 기준에 따라 1950~60년대 부대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병사나 장교들의 유족, 후손들도 민조단에 민원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엔 1979년 부대 내에서 목숨을 끊은 육군 일병 사건에 대해 민조단이 46년 만에 재조사를 진행했다. 병적기록부 등 사실 관계 대조를 거쳐 민조단은 복무 연관성을 인정했고, 유족은 이를 바탕으로 순직 결정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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