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수소 검증은 삼척, 배터리 검사는 평택…산업 시너지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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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지역별 나눠먹기
전기·수소차, 로봇, 소재 등 15개 미래 핵심 산업 분야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정부 사업이 지역별 나눠 먹기 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민간이 개발한 기술·제품의 성능을 평가하고 관련 연구개발(R&D)을 유도할 인프라 사업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2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전기·수소차, 로봇, 소재 등 15개 핵심 산업 분야 인프라 구축을 위해 2408억4500만원을 투입한다. 산업부가 사업을 공모하면 지방자치단체와 연구기관이 유치 경쟁에 참여해 사업별로 3~5년치 관련 예산을 따내는 형태다. 정부가 2022년 ‘산업혁신기반구축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김영옥 기자
그중 모빌리티 인프라 구축 사업은 관련 시설이 전국에 흩어져 시너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90억원이 투입되는 액화 수소 신뢰성 평가 기관은 지난해 강원도 삼척으로 입지가 정해졌는데, 수소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성능을 평가할 기관은 경기도 평택에 마련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미래차 전장 평가 기관 사업(332억7500만 원)은 강원도 원주가 따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전국 곳곳을 돌며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인프라의 활용도와 경제성을 따져 기능을 통폐합하거나 보완·이전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프라와 산업 현장이 완전히 동떨어진 경우도 있다. 전북 군산은 2022년 친환경 선박 추진 체계 플랫폼 사업(170억원)을 따냈지만, 현재 군산조선소에서는 블록(선박용 철 구조물) 등 선박 엔진과는 무관한 기자재만 생산된다. 정작 HD현대마린엔진·한화엔진 등 국내 주요 선박 엔진 업체는 군산에서 255㎞ 떨어진 경남 창원에 있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2022년 군산조선소를 재가동할 당시 지자체가 인프라 사업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라며 “산업적 효과보다는 지역경제 살리기로 진행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등이 지역의 산업 경쟁력과 무관하게 수백억 원 규모의 예산을 끌어올 기회로만 보고, 인프라 유치전에 중구난방 식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지난 2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발표한 지역 R&D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 부처들이 개별법에 따라 선정한 지역 혁신클러스터 222개(읍면동 기준) 가운데 41.9%(93개)가 2개 이상의 서로 다른 클러스터로 중첩 지정돼 있었다. 지역별 산업 특화 수준이 낮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청한 국회 보좌관은 “번듯한 건물에 관련 인프라가 들어서면 성과 홍보용으로 최고”라고 말했다.
R&D 선진국들의 인프라 사업 운영 방식은 판이하다. 일본은 지자체가 아닌 지역 거점 대학을 중심으로 인프라 개발을 위해 ‘산학관’이 협력한다. 일본 정부는 대학의 R&D 역량을 높이기 위해 2021년 10조엔(약 95조원) 규모의 기금도 설립했다. 독일은 전국에 미래 산업 클러스터 14곳을 조성했는데, 뮌헨(모빌리티)·아헨(데이터)·슈투트가르트(양자 센서) 등 각 지역의 산업 수요와 연구 인프라에 따라 영역을 확실히 구분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모여있어야 시너지가 나는 시설인데도, 지자체들의 예산 확보 경쟁 때문에 흩어져 있다”라며 “중앙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업자 선정만 통과하면 그 이후엔 평가와 검증에 소홀한데, 사후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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