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상호관세의 유예기간 만료(오는 8일)를 앞두고 지난 2일(현지시간) 베트남과 관세율 인하 합의를 도출했다. 그런데 합의에서 '환적 상품(제3국이 베트남을 거쳐 미국에 수출하는 물량)' 관세(40%)가 일반 관세(20%)의 2배가 된 건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3일 보도했다.

중국은 그간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고관세를 피하고자 베트남에서 환적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원산지 세탁'을 해 왔다. 이런 행위를 막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가 이번 합의에 반영됐다고 SCMP는 전했다. 매체는 "미국 정부 관리들은 최근 몇 주간 '환적 거점'인 베트남의 역할을 끝내라고 베트남 관리들을 압박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과 베트남의 무역 합의 공동성명 초안에 양국이 상대국에 우호적인 원산지 규정을 마련하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소개했다. 이는 베트남 입장에서는 미국으로 수출되는 중국 제품의 '환적 거점' 역할을 줄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11일 베트남 하노이 국제공항에 에어포스원을 타고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상호관세 유예 만료 전인 최근 몇 달간 베트남에 중국 수출이 상당히 늘었다고 한다. 브루킹스 연구소 수석 연구원인 로빈 브룩스는 SCMP에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 감소분이 다른 국가(베트남 등)와의 무역 흑자 증가로 완전히 상쇄될 정도였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을 거쳐 미국에 들어가는 중국의 환적 수출을 막기란 매우 어렵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세계무역과 세관'저널은 "원산지 국가의 완강한 태도로 인해 환적 조사가 방해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공급망이 복잡한 데다 (원산지) 공장에 접근하기도 어렵다"고 언급했다. 보고서는 "의심되는 국가가 협조해도 여러 장벽이 있어 잘못을 입증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차준홍 기자

한편 류펑위 워싱턴 주재 중국 대사관 대변인은 미국과 베트남 간 합의 도출에는 답변하지 않으면서 "중국은 중국의 이익을 희생하는 어떤 무역 협정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합법적인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한 대응 조처를 하겠다"고 했다.

2025년 4월 16일 베트남 하이퐁 국제 컨테이너 터미널 근처에 보이는 컨테이너선.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합의를 알리며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이 미국산 대형 엔진 자동차 등 핵심 품목에 대해 우선 시장 접근권을 제공한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미국 차량의 베트남 수출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루스소셜에 "미국산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가 베트남 수출 목록에 훌륭하게 추가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외신들은 비싼 미국산 차량이 가성비가 높은 중국산 차량보다 덜 매력적이라고 짚었다. 중국이 베트남에 수출한 트럭은 금액 규모로 따지면 지난해 3억 3390만 달러(약 4532억원)를 기록해 전년 대비 54% 늘었다.

SCMP는 트럼프 기업이 베트남 북부에 15억 달러 규모의 고급 리조트 프로젝트를 개발한다는 계획이 이번 협상에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들 에릭 트럼프(오른쪽)가 5월 21일 흥옌성에서 열린 트럼프 인터내셔널, 흥옌 리조트 및 골프장 프로젝트 착공식에 참석해 셀카를 찍고 있다. AFP통신=연합뉴스

베트남은 중국과 멕시코에 이어 대미 흑자 3위 국가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베트남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큰 흑자를 거두고 있다며 경계 대상으로 삼았다. 베트남은 지난해 미국에 1366억 달러(약 185조 3935억원)를 수출했는데, 이는 2023년 대비 19% 증가한 수치다. 반면 수입액은 131억 달러(약 17조 7793억원)로 수출액의 10분의 1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