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본전과 역적’ 사이의 고뇌…주루코치의 숙명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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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잠실 두산전에서 SSG 박성한(아래)과 조동화 3루코치가 파울 지역에서 부딪히고 있다. 사진 티빙 중계화면 캡처
#1 지난 2일 수원 키움 히어로즈-KT 위즈전. 5회말 2사 1루 3-0으로 앞선 KT의 공격. 안현민의 좌중간 2루타가 나오자 1루 주자 권동진이 3루까지 내달린다. 그런데 타구가 외야 깊숙이 향하면서 키움 수비진이 공을 빠르게 처리하지 못한다. 이 빈틈을 간파한 최만호 3루코치. 주자를 홈까지 돌린다. 사인을 받은 권동진은 전력으로 질주했고, 홈에서 세이프를 만들어낸다. 이 한 점은 쐐기점이 됐고, KT는 4-2로 이겼다.
#2 6월 28일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잠실 경기. 8-9로 뒤진 LG가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2사 1루 찬스를 잡았다. 이어 신민재가 좌익선상으로 2루타 때렸는데 정수성 3루코치가 문보경을 3루에서 멈춰 세운다. 돌리기도, 세우기도 애매한, 말 그대로 고민의 순간. LG는 결국 추가점을 내지 못하고 졌다.
#3. 6월 24일 잠실 SSG 랜더스-두산 베어스전에선 5회초 SSG 공격 도중 1루 주자 박성한과 조동화 3루코치가 파울 지역에서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선 KT 권동진의 경우처럼 2사 1루에서 좌전 2루타가 나왔는데 수비 상황을 파악하던 조 코치의 멈춤 지시가 조금 늦었고, 비로 그라운드가 젖은 상태라 박성한이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야구규약은 “주자의 주루 과정에서 코치가 육체적으로 도움을 주면 아웃을 선언한다”고 명시해 박성한은 바로 아웃 처리됐다.
최근 열흘 사이 나온 이들 사례는 주루코치, 특히 3루코치의 고뇌를 그대로 보여준다. 야구계에는 “3루코치는 잘해도 본전, 못하면 역적”이란 속설이 있다. 이는 경기 내내 3루코치가 받는 상당한 압박감을 뜻한다. 특히 1점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상황에서 3루코치의 판단 하나가 미치는 영향은 홈런이나 삼진만큼이나 결정적이다. 3루코치의 순간적인 고뇌가 곧 숙명인 이유다.

주자를 멈춰세우고 있는 KT 최만호 3루코치. 사진 KT 위즈
KT 최만호 코치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3루코치를 맡아오고 있다. 한화 이글스를 시작으로 넥센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를 차례로 거쳤고, 2020년부터는 KT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2일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최 코치는 “사실 오늘 상황은 주자를 세웠어야 맞다. 그러나 2아웃이었고, 다음 타자가 최근 타격감이 좋지 않은 장성우라는 점을 감안해 과감하게 돌렸다”면서 “3루코치는 주자의 주력은 물론 지금의 승부 상황과 수비수의 송구 능력, 다음 타자의 컨디션 등을 모두 생각해놓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3루코치가 어렵다. 만약 권동진이 아웃됐다면 내가 많은 욕을 먹었을 것이다”고 했다.
3루코치의 성향도 작전의 향방을 가른다. 공격적인 유형이라면 과감하게 주자를 돌리지만, 안전한 스타일이면 후속타자의 타석에서 승부를 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기에는 사령탑의 성향도 크게 작용한다. 최근 만난 LG 염경엽 감독은 “나는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를 선호한다. 공격적으로 나가야 상대 수비진이 부담을 느낀다”면서 “물론 사람인지라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코치들에겐 ‘책임은 내가 질 테니 과감하게 주자를 돌리라’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KT 최만호 3루코치(왼쪽)와 멜 로하스 주니어. 사진 KT 위즈
보통 3루코치는 현역 시절 주력이 좋고, 주루 센스가 뛰어났던 지도자들이 맡는다. 그럼에도 경력 초반 몇 차례 실수가 반복되면 스스로 보직을 내려놓는 경우가 많다.
최만호 코치는 “비판은 많이 받지만 그래도 3루코치는 적지 않은 스릴을 느낄 수 있다. 과감한 주문이 성공할 때 오는 특별한 쾌감이 있다”면서 “팬들께서도 주루코치를 나쁘게만 보지 마시고, 오히려 그 상황에서 해당 코치가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뒤집어 생각해보시면 야구를 보는 재미가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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