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후 인플레'…기온 1도 오르면, 식품 물가 최대 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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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국내선 역대급 폭염과 이른바 ‘마른 장마’가 예고되는 가운데, 기후 변화가 전 세계 밥상 물가를 덮쳤다. 기후 위기가 수년 간 누적되면서 농작물과 수산물의 수확량이 줄었고,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이른바 ‘기후 인플레이션’ 현상이다. 앞으로 10년 내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기온이 1도 오를 때 물가가 최대 3%포인트 넘게 오르는 걸로 나타났다.

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달 영국의 식품 물가 상승률은 전년 같은 달 대비 3.7% 올랐다. 지난해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영국소매연맹(BRC) 최고경영자 헬렌 딕킨슨은 “덥고 건조한 날씨로 인해 수확량이 줄어 과일과 채소 가격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영국 기상청은 올봄이 영국 역사상 가장 따뜻하고 화창했다고 밝혔다. FT는 “봄철의 이른 햇살과 고온은 딸기·토마토 같은 일부 신선 농산물의 수확량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강수량 부족은 밀과 보리 같은 작물에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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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폭염으로 채소류 가격의 오름세가 가파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배추 한 포기 가격은 3679원으로 5월(3148원)보다 16.87% 올랐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고객이 채소를 고르고 있는 모습. 뉴스1

로이터에 따르면 일본의 7월 식품 가격은 큰 폭으로 오를 전망이다. 데이코쿠 데이터뱅크가 식품업체 195곳을 조사한 결과, 이달에 2105개 품목의 가격이 평균 15% 인상될 걸로 나타났다.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식재료 가격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쌀로 만든 품목을 비롯해 초콜릿·껌·감자칩·파스타소스 등이다. 유명 식품업체인 아지노모토 AGF는 커피 품목의 가격을 약 25~55% 인상한다. 원두는 이상기후로 가격이 오른 대표적인 원자재다.

한국의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의 원인으로도 기후의 영향이 언급됐다. 지난달 무 가격이 전년 대비 54%, 오징어채가 39.9% 오르는 등 수산물과 축산물 가격 급등이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박병선 물가동향과장은 “무와 배추는 잦은 폭우와 이상 기온 등의 기상 요인으로 인해 출하량이 줄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다”며 “수산물은 바다 수온이 오르며 어획량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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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그렇다면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식품 물가는 얼마나 오를까. 지난해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ㆍ유럽중앙은행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2035년까지 기온이 1도 오르면 식품 물가가 연간 0.92~3.23%포인트, 전체 소비자 물가(CPI)는 연간 0.32~1.18%포인트 오르는 걸로 추정된다. 1996년부터 2021년까지 전 세계 121개국, 2만7000건 이상의 월간 물가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2022년에도 유럽의 극심한 여름 폭염으로 식품 물가는 최대 0.93%포인트 올랐다. 보고서는 “월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할 때 가격 수준에 미치는 영향은 12개월 내내 지속하며, 초기 급등이 이후 가격 하락으로 상쇄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지난해 나온 한국은행 연구에서도 폭염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기온이 1도 오르면 농산물가격은 0.4~0.5%포인트 오르는 걸로 나타났다. 기온이 1도 오르는 충격이 1년간 지속된다면 이후 농산물 가격은 2% 오르고, 전체 소비자물가 수준은 0.7% 높아질 걸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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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소현 인턴

기후 인플레는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장기간 누적된다. 남유럽에서는 2022년부터 2년간 심각한 가뭄 이후 올리브유 가격이 연간 50% 이상 급등했다. 치솟는 커피ㆍ코코아 가격은 브라질ㆍ베트남과 서아프리카의 극심한 폭염ㆍ가뭄의 영향을 받았다. 아라비카 원두의 경우 최근 5년간 250% 올랐다. 한국ㆍ중국ㆍ일본ㆍ인도에선 지난해 폭염이 채소ㆍ쌀ㆍ수산물 등의 가격을 크게 밀어 올렸다.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막시밀리안 코츠 박사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들 모두는 기후 충격이 이전엔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극단적이었기에 수확량 감소가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코츠 박사는 “기후 변화를 멈추지 않으면 식품 물가 상승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포츠담연구소는 이대로 기후 위기가 최악으로 지속된다면, 2060년에는 물가가 추가로 연간 4%포인트 이상 오를 걸로 추정했다. 기후 변화가 없을 때와 비교해 매년 4% 포인트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코츠 박사는 “‘기후변화는 식품을 더 비싸게 만든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정부가 재생 에너지 투자에 나설 때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며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석유ㆍ가스 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 산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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