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Health&] [기고] 상당수 건강 문제는 잘못된 생활습관 누적에서 비롯…예방 관리와 조기 개입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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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일영 추내과의원 부원장
대부분 문제 해결형 진료 이뤄져
구체적이고 개인화된 관리법 필요

장일영추내과의원
현재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83세, 건강수명은 72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다. 중증 질환 치료 성과도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다.
이처럼 국민의 건강 수준이 크게 향상됐지만, 여전히 의료 수요는 줄지 않고 의사 부족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고령 인구가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료 현장에서 보면 이른 시기부터 병원을 찾아 건강을 관리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사람들은 이제 건강검진에서의 작은 이상 소견을 넘어 체력 저하, 기억력 감퇴 등의 증상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병원을 찾는다.
예방 관리 통해 노년층 신체 기능 개선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현 의료 체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의료는 문제 중심으로 체계가 잡혀 있다. 즉 어떤 증상이나 질병이 생기면 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질병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검사나 진료는 의료 현장에서 소극적으로 다뤄지곤 한다. 긴 상담은 물론 환자 개인의 복합적인 상황을 충분히 반영해 조율할 수 있는 구조적 여유도 부족한 실정이다. 환자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개인화된 관리법을 듣길 기대하지만, 제도적인 한계 속에서 “건강하게 드세요” “운동을 꾸준히 하세요” 같은 포괄적인 조언만을 전달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건강은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뉘는 이분법적 개념이 아니라, 연속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많은 건강 문제는 평소의 잘못된 생활습관 누적에서 비롯되며, 크고 작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단순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증상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오랜 시간 누적된 원인들이 2차, 3차로 상호작용하며 나타나는 결과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병이 생긴 뒤에야 치료에 집중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예방 중심의 개인 맞춤형 진료야말로 그 대안이며 현장에서도 그 효과는 뚜렷하게 입증됐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로도 일했던 필자는 2014년부터 강원도 평창군과 함께 평창 노인 코호트를 구축, 다양한 노쇠 예방 사업을 주도했다. 평균 77세인 어르신 187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비교적 강도 높은 운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단백질 영양 음료도 함께 제공했다. 당시 공중보건의들과 약물 조정, 우울감, 낙상 위험 등 참가자들의 주요 건강 요인도 주기적으로 관리했다. 그 결과 사업에 참여한 노년층의 신체 기능이 기존보다 10 년가량 젊어지고 의료비 지출과 입원율 또한 크게 감소했다. 이 같은 효과는 질병의 중증도, 연령대와 관계없이 모두에게서 나타났다. 단편적인 건강 정보나 일회성 진료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결과다.
통합 접근으로 회복 방해 요인 찾아야
실질적인 건강 개선을 이루려면 단편적인 건강 정보나 일회성 진료를 넘어 삶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는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일이다. 질병이나 검사 결과를 나열하고 각 요소를 따로 해결하려 해서는 체감하는 효과를 얻기 어렵다. 삶의 궤적을 객관적으로 되짚으며 회복을 방해하는 핵심 요인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운동과 식사를 꾸준히 해도 근육이 빠지고 피로가 심하다면 괜찮다고 여긴 단백질 섭취가 실제로 수년간 부족했을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 기억력 감퇴가 지속되는데 치매는 아니라면, 실천 중인 활동이 인지 기능 개선에 충분하지 않거나 조정되지 않은 과거 약물 등이 효과를 방해하는 요인일 수 있다. 이런 미세한 불균형이 누적되면 인지 기능 저하나 전신 쇠약이 오히려 가속화될 수 있다. 특히나 생활습관의 경우 하루 1%의 변화만으로도 1년 뒤 전혀 다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평창에서의 연구가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근 정부는 올해 노쇠를 예방·지연하기 위한 노쇠 예방 사업을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적으로 시작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확대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돌봄이 필요해지기 전 노인 스스로 건강 기능을 유지하고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만성질환 중심의 공공 보건에서 벗어나 개인의 기능과 삶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방향으로의 전환으로 매우 반가운 변화다. 사업이 진료 현장과 잘 연결된다면 그 효과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초고령사회에 필요한 건 단순한 문제 해결형 ‘치료’가 아닌, 삶의 궤적을 반영한 유연하고 개인화된 ‘관리’형 중심의 진료라는 사실을 기억해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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