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스타와 함께 크는 양육 팬덤…13조 K팝 그렇게 커졌다 [창간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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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트리거 60' ⑥ 세계를 홀린 K팝

블랙핑크
“한국 음악을 세상이 들어줄 날이 올까요? 일단 한국이란 나라에 문화적 이미지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코리아는 그냥 ‘나이스 프라이스(nice price)’의 나라인 것 같아요.” 30여 년 전인 1998년 가수 신해철의 말이다. 97년 그룹 넥스트 해체 후 영국에서 1년간 유학하며 제작한 솔로 앨범을 국내에 발표하며 한 인터뷰였다. 좋은 음악이 있어도 한국에 문화적 매력을 못 느끼니 아예 관심 자체가 없더라는 안타까운 토로였다.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최근 넷플릭스 글로벌 1위에 오르며 세계를 강타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아이돌 소재의, 최초의 해외 제작 애니메이션이다. 퇴마사 K팝 걸그룹이 악령인 K팝 보이그룹과 맞서 싸우는 스토리에, 다양한 한국 문화 코드를 섞었다. 프로듀서 테디, 안무가 리정, 트와이스 등이 참여했고 OST도 초대박이 났다. 오늘 K팝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니 미니앨범 ‘루비’
이제는 전 세계가 K팝을 듣고 K팝 아이돌에게 열광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한식을 즐기며 한국을 찾아온다. ‘21세기의 비틀스’ BTS는 2012~2022년 빌보드 싱글 메인 차트(‘핫100’) 1위에 가장 많은 곡을 올린 아티스트다. 이들의 내년 봄 완전체 컴백 소식은 외신을 뜨겁게 달궜다. 블랙핑크 제니가 NBC 토크쇼에서 소개한 한국 과자는 글로벌 팬들이 찾으며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K팝 열풍, 서구 주류 음악시장 새 지형
1990년대 후반 K드라마, 2000년대 K팝 두 축으로 발화한 한류의 물결이 이제 영화와 OTT 시리즈, 게임과 만화, 문학과 뮤지컬, 음식과 패션 등 전방위로 뻗어 나가고 있다. K팝을 기반으로 한 한류의 경제효과는 37조원(2022, 한국경제연구원). 2022년 미국 US뉴스·와튼 스쿨의 ‘글로벌 문화적 영향력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7위였다. 문화가 국격을 올리는 K컬처 시대다.
K팝 열풍은 우리 음악의 성취를 넘어선 세계사적 사건이다. 유튜브로 상징되는 디지털 미디어, 문화적 다양성과 소수자성에 민감한 MZ 세대의 등장 등으로 서구 주류 음악 시장의 작동 방식이 바뀌는 과정에서 K팝이 중심이 돼 세계 문화산업의 지형도를 새로 썼다.

HOT
K팝은 출발부터 해외시장을 염두에 뒀다. 1996년 최초의 아이돌 그룹 HOT를 만든 이수만은 97년 SM엔터테인먼트 직원들에게 “내 목표는 해외 시장 진출”이라며 “Culture First, Economy Next(문화가 먼저고 경제는 따라서 온다)”라고 선언했다. SM은 해외활동을 노리고 교포 출신 다국적 멤버를 영입했다. 1999년 HOT의 중국 베이징 콘서트 때 ‘한류’란 말이 처음 나왔다. 2000년대 초 불법 음원 문제로 위기감이 팽배한 가요계에 아이돌 음악은 새로운 활로였다. 2002년 K팝 최초로 일본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른 13세 소녀 가수 보아를 필두로 일본·중국 등 아시아에서 한류 열풍이 거셌다.

원더걸스
높게만 보이던 영미 시장의 벽을 깬 것은 유튜브·SNS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였다. 팬시한 K팝 뮤직비디오와 커버댄스는 유튜브에서 가장 각광받는 콘텐트의 하나였다. 섹스·마약·폭력이 난무하는 힙합 등과 달리 K팝은 서구에서 부모가 권할 수 있는 밝고 안전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졌다. ‘말춤’으로 터진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신드롬도 유튜브 패러디와 커버댄스 열풍의 결과였다. ‘강남스타일’ 뮤비는 유튜브 최초로 10억 뷰를 돌파해 유튜브 역사도 새로 썼다.
음악업계 “덜 한국적인, 탈K팝 전략 세워”

KJAD-재사용가능-싸이 강남스타일
이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중소기획사의 한계를 겪고 있던 BTS는 적극적인 유튜브와 SNS 활동을 통해 글로벌 아미 팬덤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매니저와의 갈등으로 방송 출연이 뜻대로 안 된 아이러니한 결과였다. “BTS 현상의 본질은 아미 팬덤”(평론가 이지행)이라는 말처럼, K팝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한 팬들이 스타와 소통하고, 스타의 성장을 자신의 성장과 동일시하며 적극 후원하는 양육자 팬덤 비즈니스다.

BTS
BTS는 ‘빼어난 비주얼, 중독적 멜로디, 포인트 안무가 있는 역동적 댄스’라는 아이돌 K팝 3박자에 철학과 스토리를 더했다. 2020년 K팝 최초의 빌보드 1위(‘다이나마이트’),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5년 연속 수상 등 각종 신기록을 써내려갔다. BTS의 ‘러브 유어셀프’라는 메시지는 21세기 청춘에 대한 위로로 받아들여졌고, BTS는 지구촌 ‘선한 영향력’의 상징이 됐다. 마이너리티, 서브 컬처에 대한 수용성과 연대에 기반한 K팝 팬덤은 때때로 정치적 주체로 변모하기도 했다.
K팝은 음악 외적인 변화도 가져왔다. 아낌없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헌신’을 특징으로 하는 K팝 팬덤 문화가 여러 영역으로 확대됐다. 행동력 있는 팬덤 보유 여부가 성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정도다. 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돌 멤버를 선발하는 K팝은 경쟁만능, 승자독식, 공정성과 능력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기제로도 작용했다. MZ세대의 남다른 ‘공정’ 감각의 형성에 K팝 오디션 프로가 크게 기여했다.

2025 BTS 페스타
문제는 최근 들어 K팝의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는 점이다. BTS의 군 공백기를 블랙핑크가 너끈히 메꾸긴 했지만, 그 둘을 잇는 후속주자가 잘 보이지 않아 ‘K팝 위기론’도 나온다. K팝 시장 규모가 연간 12조7000억원(92억 달러)로 급성장했으나 아직 글로벌 음악 시장 1300억 달러(약 179조원)에 크게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모건 스탠리 추정).
음악업계는 ‘현지화’와 ‘K팝에서 K를 지우는 탈K팝’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하이브의 미국 걸그룹 캣츠아이 등 해외 오디션에서 현지 멤버를 뽑아 육성한 현지화 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K팝이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보다 덜 한국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이미 BTS와 블랙핑크는 글로벌 시장에서 K팝이라기보다 일반 팝으로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K팝 곡들로 채워진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 음원 차트를 휩쓰는 데서 알 수 있듯 여전히 ‘K팝스러운 K팝’에 대한 수요도 분명히 존재한다.

로제
작곡가 김형석씨는 “K팝의 90% 이상이 외국인 작곡이라 K팝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고 K팝이라는 하위 범주에서도 벗어날 때”라며 “아무리 K를 지워도 끝까지 남는 K의 본질은 팬 커뮤니티 문화”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제는 K팝이라는 문화 브랜드가 형성돼 아이돌 음악 외에도 다양한 한국 음악들이 기회를 얻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평했다.

신재민 기자
물론 숙제도 많다. 중소기획사의 아이돌 인권 문제, 하이브·뉴진스 사태처럼 커진 사업 규모에 못 미치는 리스크 관리력, 팬덤의 과소비를 부풀리는 왜곡된 상술 등은 극복해야 할 점으로 지적된다.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90년대 K팝의 씨앗 뿌렸다
K팝 한류의 싹은 1990년대에 뿌려졌다. 87년 민주항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드디어 문화의 시대가 열렸다. “1993년 문민정부 시대 출범과 경제 호황, PC통신 활성화 등의 영향으로 당시 X세대를 중심으로 문화 소비 욕구가 커졌다.”(음악평론가 임희윤)
95년은 역사적인 해였다. 아이돌 K팝의 전형을 만든 SM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됐고, 케이블TV가 개국해 MTV 등 ‘보는 음악’의 시대가 열렸다. 대기업의 문화산업 진출도 같은 해 이뤄졌다. 96년에는 음반 사전심의제도가 철폐됐고, 98년부터는 일본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졌다. ‘문화입국론’의 토대도 이 시기 만들어졌다.
92년 데뷔하며 랩 댄스음악 시대를 연 서태지와 아이들은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다. 문화가 산업이자 권력이 된 것이다. 창작자들도 엘리트 인력으로 대거 물갈이됐다. 이수만(SM)을 제외한 방시혁(하이브), 박진영(JYP), 양현석(YG)은 모두 70년대에 태어나 20대에 90년대 대중문화의 폭발을 경험한 후, 업계의 리더가 됐다. K팝 한류 열풍은 60~70년대 산업화, 80년대 민주화를 완수한 한국 사회가 90년대 문화의 시대를 맞으며 축적한 문화적 역량이 폭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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